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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이슈 취업과 일자리

"저임금에 업무과다·비전 안보여"···'퇴사 → 시간제 일자리'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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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직장부터 '파트타임'···청년 '퇴사 보고서'로 본 현실

첫 월급 200만원 미만이 59%

계약과 무관한 업무·야근 일쑤

중기 → 대기업 점프는 언감생심

"일자리 양보다 의욕 고취가 우선

직업훈련 늘려 구직단념 막아야"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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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생 윤혜영 씨는 상업 계열 특성화고등학교 국제통상과를 졸업했다. 그의 선생님은 입학 첫날 “여기는 취업하는 친구들이 온다. 취업해야 한다”며 늘 취업을 강조했다. 취업 불안감이 컸던 윤 씨는 무역 영어를 시작으로 무역관리사, 컴퓨터 활용 등 자격증을 10개나 땄다. 내신 관리도 중요했다. 내신 3등급을 유지해야 학교가 추천하는 연봉 2000만 원의 직장 취업이 가능했다. 윤 씨는 고3 때 현장실습생으로 세무법인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7시간 근무하고 야근이 없다’던 계약서는 현장에서 8시간 근무, 잦은 야근으로 바뀌었다. 윤 씨를 힘들게 한 건 직장의 냉대와 주먹구구식 일 처리였다. 윤 씨는 “상사가 분기별로 본인 방에 불러 쌓여 있는 프린트물에 줄 몇 개 그으면서 알려준 게 전부였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8개월 정규직 생활을 접고 퇴사했다. 이후 생활용품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윤 씨처럼 청년이 첫 직장을 떠나는 것은 기대와 다른 직장 생활 때문이다. 청년들은 나이가 어리고 신입 직원이기 때문에 낮은 임금을 견디더라도 스스로 성장할 수 없고 부당한 직장은 참을 수 없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첫 직장의 이런 경험은 그들을 대기업 취업 경쟁 전선에서 오래 머물게 하고 고용시장으로 들어올 결심을 막고 있다.

3일 사단법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발표한 ‘퇴사,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 보고서에는 윤 씨를 비롯해 21명 청년(1985~1999년생)의 취업 준비부터 퇴사하기까지의 면담 내용이 담겼다.

이들의 퇴사 사유를 보면 공통적으로 예상과 다른 과도한 업무, 낮은 임금, 경직적인 조직 문화가 꼽힌다. 특히 사회초년생이라는 신분을 감안해도 임금이 너무 낮아 이들이 직장에서 오래 일할 동기를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7월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청년이 첫 일자리에 취업할 당시 임금은 월 200만 원 미만이 59.8%로 절반을 넘었다. 월 100만 원 미만 비중도 13.7%였다. 청년 상당수가 인턴이나 시간제 일자리로 일을 시작하면서 직장에 대한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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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특징인 ‘일과 생활의 균형’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직장이 많은 점도 이들의 사회생활을 막는다. 통계청이 첫 일자리를 그만둔 사유를 조사한 결과 ‘전망이 없다(7.7%)’ ‘전공·적성이 맞지 않는다(6.3%)’ 등 비근로 여건 답변율이 10%를 넘었다. 청년이 취업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한 것을 고려하면 첫 직장에 대한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스스로 대졸 취업준비생의 전형으로 여긴 1990년생 장가을 씨도 이런 이유로 퇴사를 결심했다.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영국 어학연수와 공모전, 대외 활동 등 취업에 필요하다는 모든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졸업 후 1년 동안 썼던 지원서만 50장이 넘는다. 대기업 인턴 3개월을 시작으로 어렵게 취직한 직장(스타트업)은 ‘나는 일 잘하는 사람이 되자’라는 결심을 무너뜨렸다. 장 씨는 “배우고 있다는 기분이 들다가 정규직으로 2년쯤 지났을 때 직장의 한계가 보였다”며 “좋아하는 일과 일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고용시장에 들어온 청년의 직장 이동은 더 여의치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격차는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데 걸림돌이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회계연도 기업체 노동비용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미만 기업체의 노동비용(임금·복지 등)은 508만 6000원으로 300인 이상(753만 2000원)의 67.5%를 기록했다. 대기업 채용은 완성형 인재 선발로 바뀌어 경력이 없는 청년의 취업이 더 힘든 상황이다. 청년 스스로 시간제 일자리를 원한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의 대부분은 임금이 낮고 고용 형태가 불안하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양적으로만 일자리를 매칭하는 것보다 청년 스스로 원하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의욕을 높여주는 게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평생 직장 개념이 흐려진 청년에게 기성세대의 참고 다니는 직장 문화를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객관적인 ‘괜찮은 일자리’에서 주관적인 ‘괜찮은 일자리’로의 사회 인식 변화도 요구된다. 지난해 11월 고용부의 ‘청년도전지원사업’에 참여했던 1993년생 임지영 씨는 이 사업 참여 전 코로나19 후유증으로 심해진 아토피 탓에 집에만 있었다. 사업은 참가자들끼리 팀을 이뤄 축구단, 제약회사, 케이크 제작 업체 등 다양한 기업과 사람을 연결했다. 이후 임 씨는 가구 업체 훈련생으로 책을 쓰면서 배우를 준비하고 있다. 임 씨는 “진짜 취업을 지원하려면 우선 청년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괜찮은 일자리’가 한정된 상황에서 구인난을 겪는 기업이 청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볼 시점”이라며 “일을 통해 자존감을 쌓는 청년의 특성에 맞는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용 상황이 좋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청년을 위한 직업 훈련 비용이 상대적으로 미미하다”며 “이 비용을 늘려 지원이 부족해 청년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상황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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