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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논설실의 뉴스 읽기] “정권 교체 할라믄 민주당 밀어줘야제”… “거긴 썩었고 조국이 참신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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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조국당 사활 건 호남 쟁탈전

조선일보

10·16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 지원하려 영광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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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오전 7시 30분 전남 영광읍 로터리. 영광 군수 재선거(16일)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후보들이 앞다퉈 출근길 인사에 나섰다. 공식 선거운동 전이었지만 세 진영 간 경쟁은 치열했다. 3일에는 민주당·조국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총출동했다. 민주당은 “정권 교체를 위해선 민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했다. 지난달 중순부터 영광 월세살이 중인 조국 대표는 “호남에 고인 물을 이젠 바꾸자”고 했다. 진보당은 깨끗한 지역 일꾼을 뽑자며 두 당의 틈을 파고들었다.

여론조사도 초박빙 3파전이다. 지난달 29~30일 리얼미터 조사에서 민주당 장세일 후보 32.5%, 조국당 장현 30.9%, 진보당 이석하 30.1%로 격차는 2%p 남짓이었다. 3당 모두 “선거 결과를 알 수 없다”고 했다. 전례가 드문 일이다. 이번 재·보선은 단순히 기초단체장 몇 명 뽑는 선거가 아니다. 2026년 지방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누가 호남 주도권을 잡을 것이냐를 가름하는 패권 전쟁의 전초전이다.

◇”고인 물 썩는다” vs “그래도 민주당뿐”

현장 지역 민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영광읍에 사는 김모(62)씨는 “정권 교체 할라믄 민주당을 밀어줘야제”라고 했다. “미워도 민주당을 살려놔야 뭐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대 여성 이모씨는 “정치는 잘 모르지만 민주당에 호감이 간다”고 했다. 청년 김복식씨도 “어르신을 중심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여전하다”고 했다.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이 있지만 그래도 믿을 건 민주당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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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하지만 반(反)민주당 정서도 만만찮았다. 현장서 만난 주민 절반 이상이 오랜 불만을 표시했다. 노모(78)씨는 “이제 당만 보고 찍는 건 그만할 때가 됐제. 조국당이 깨끗하고 참신하지라”라고 했다. 배달업을 하는 유모(55)씨는 “민주당은 이제 ‘고인 물’이고 썩었다. 이번엔 후보도 잘못 낸 것 같다”고 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조용현(61)씨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이젠 새롭게 바꿔보자는 사람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많아졌다”고 했다. 민주당 독점으로 인한 부작용이 크니 대안을 밀자는 것이다.

정당보다 후보의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주민도 적지 않았다. 김정순(72)씨는 “전임 군수도 법원 판결로 날아갔는데 이번에도 또 전과나 문제 있는 후보를 뽑으면 안 된다”고 했다. 70대 농민 김모씨는 “세 후보 토론을 봤는데 진보당 이석하 후보가 가장 낫더라”라고 했다. 상인 이모씨는 “농민 출신으로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진보당 후보가 좋다”고 했다.

◇”호남 바꾸자”에 “尹 심판이 우선”

선거운동 첫날인 3일 이재명 대표가 직접 영광에 내려와 장세일 후보를 지원했다. 지난달에 이어 두 번째다. 선거 전까지 한두번 더 내려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선거 판세가 녹록지 않다는 의미다. 만일 영광 선거에서 진다면 11월 선거법·위증교사 재판 선고와 맞물려 호남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이 대표로선 이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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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이 대표는 주민 기본 소득 100만원 분기별 지급 등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 민주당은 “이번에 영광에 ‘돈쭐’ 내주겠다”고 했다. 국회 다수당의 힘을 앞세워 비슷한 공약을 낸 조국당과 확실히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영광 군수 선거 때도 거액의 지원금을 공약한 후보가 승리했다.

조국당은 바닥을 훑으면서 호남 정치 세력 교체와 상대 후보 도덕성 공격에 나섰다. 조 대표는 2일 영광군청 앞에서 연 ‘꾹 다방’ 정책 설명회에서 ‘일일 바리스타’로 나섰다. 조 대표가 직접 서빙한 ‘탄핵 커피’를 맛보기 위해 수백명이 줄을 섰다. 조 대표는 월세살이 중 수시로 경로당·농가·상가를 돌고 길거리 인사도 하고 있다. 조국 바람몰이로 장현 후보를 띄우려는 것이다.

영광은 다른 호남 지역에 비해 ‘반민주당 정서’와 ‘무소속 바람’이 세다. 8번의 군수 선거 중 무소속이 3번 당선됐다. 조 대표는 “민주당의 호남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없애려면 경쟁이 필요하다. 이제 호남 정치 개혁에 나설 때가 됐다”고 했다. “민주당은 자기들이 본진이라는데 고장이 나면 수리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도 했다. 민주당과 호남 패권을 놓고 본격 경쟁을 시작하겠다는 얘기다. 조국당 관계자는 “영광에서 이긴다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호남 주도 세력 교체를 이룰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총선 때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당) 하자더니 비례 12석을 챙기고 나선 큰집 상대로 싸움을 걸고 있다”고 했다. 영광이 지역구인 이개호 의원은 “윤 정권 심판과 정권 교체가 최우선이어야 한다”며 “윤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싸워야 할 때 집안 싸움을 벌이면 호남이 외면할 것”이라고 했다.

◇민주 조직력, 조국 바람 막을까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 박지원·정청래·이개호·한준호 의원 등 당 지도부와 중진들을 대거 투입했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누가 앞섰다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초박빙이라 조직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개호 의원은 “초반 조국 바람이 분 것은 맞지만 집안 싸움만 하는 조국당은 결국 꺼질 것”이라고 했다. 박지원 의원은 “이 대표가 나서면 조국 바람을 잠재울 수 있다”며 “민주당의 선거 경험과 조직력이 막판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조국당도 조직세 부족은 인정한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바닥 분위기는 좋은데 투표로 연결되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여론조사에서 5%p 이상 이겨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보협 대변인은 “그동안 투표를 포기했던 민주당 비판층이 조국당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표장에 나오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조국당은 민주당 후보의 전과(폭력행위 처벌법과 지원금 사기)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전과 가진 사람이 군수가 되면 군 살림이 또 망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장현 후보가 서울 강남 청담동 아파트를 보유한 사실을 부각시키며 ‘서울에 부동산을 가진 철새 정치인’이라고 반격하고 있다.

진보당 지지율도 변수다. 최근 민주·조국당 후보 간 도덕성 공방에 진보당이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전국의 진보당 조직이 영광에 집결한 영향도 있다. 진보당 지지율이 올라가면 전통적 민주당 지지표가 잠식될 수 있다. 일부에선 ‘진보당 이변’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조국·김경수 손잡으면 이재명 철옹성 넘을까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호남에서 민주당과의 경쟁을 공개 선언하면서 야권 대선 후보 간의 경쟁에도 관심이 쏠린다. 조 대표는 선거 현장에서 기자와 만나 “이번 영광 선거뿐 아니라 지방선거와 대선, 총선까지 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선거가 양측 간 경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민주당에선 이재명 대표의 호남 내 입지를 ‘난공불락 철옹성’이라고 표현한다. 박지원 의원은 “누구도 흔들 수 없을 정도로 이 대표 지지세가 견고하다”고 했다. 조 대표도 “이 대표 지지율이 압도적이라 비교가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호남에서 주도권을 다투려면 이 대표와 대선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조 대표가 이 대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영광 주민들에게 물어봤다. 상당수는 “두 사람 모두 야권에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대표 지지가 훨씬 높다”고 했다. 다만 일부 주민은 “조국이 좀 더 청렴해 보인다”고 했다. 이모(66)씨는 “이 대표는 이것저것 걸린 게 많지만 조 대표는 좀 다르지 않으냐”고 했고, 김정순(72)씨는 “조 대표에게 좀 더 호감이 간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개인 비리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대표는 11월 1심 선고가 예정돼 있고 조 대표는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조 대표는 “이 대표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내 재판이 먼저 끝날 텐데 내가 대안이 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사면·복권 가능성에 대해선 “윤 대통령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민주당 일각에선 조 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친문 핵심과 연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 대표가 유죄 판결로 대선에 나가지 못하면 김 전 지사가 대신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조국+김경수’ 카드로 이 대표 철옹성을 넘자는 얘기다. 조 대표는 “나는 친문이지만 당내엔 친문이 거의 없다”며 “김 전 지사나 친문과 연대를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친문 진영에서도 “시기상조”라고 했다. 야권 관계자는 “지금 호남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친문에 대한 거부감이 커 연대의 이득이 많지 않다”고 했다.

[배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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