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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부와 권력으로 쌓은 견고한 피라미드… 그 꼭대기를 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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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지금 문학은] K세태, 계층과 욕망

조선일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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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의 빛

심윤경 장편소설 | 문학동네 | 268쪽 | 1만6800원

조선일보

/다산책방


시티 뷰

우신영 장편소설 | 다산책방 | 276쪽 | 1만7000원

조선일보

/민음사


아찰란 피크닉

오수완 장편소설 | 민음사 | 372쪽 | 1만5000원

통속성과 문학성을 오가며 오늘날 세상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최근 출간된 한국 장편소설이 보이는 경향성이다. Books가 선보이는 ‘지금 문학은’ 특집은 ‘K세태소설’이다. 소설 세 편에서 두드러지는 핵심 단어를 꼽자면 ‘계층’과 ‘욕망’이다. 돈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세계. 피라미드 꼭대기에 오르려고, 혹은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분투하는 인간 군상이 있다. 그들이 만든 제각각 욕망 덩어리들이 꿀렁거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2024년 서울의 개츠비

‘위대한 그의 빛’은 미국 작가 스콧 F. 피츠제럴드의 1925년 작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모태로 썼다. 소설의 배경은 압구정동 H아파트와 성수동 T타워.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성수동 트리마제를 노골적으로 환기한다. ‘개츠비’의 배경이 된 뉴욕 롱아일랜드가 작은 만을 끼고 이스트 에그와 웨스트 에그로 나뉘었듯, 두 공간은 한강을 사이에 끼고 마주 본다. 전통 부자들이 사는 동네와 신흥 부유층의 세계를 양분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심윤경은 작가의 말에서 ‘올드 머니와 뉴 머니를 대표하는 두 건물이 찰랑이는 넓은 물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이 풍경은 분명 낯익은 데가 있었다’면서 ‘개츠비가 바다 건너편 가물거리는 초록 불빛을 향해 손을 내밀던 바로 그 자리에 선 놀라움 속에서 이 소설은 시작됐다’고 했다. 화자를 여성으로 바꾼 2024년 서울판 ‘개츠비’인 셈.

T타워 펜트하우스에 사는 세계적인 바이오 스타트업 에클버그 CEO 제이 강이 ‘개츠비’일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상 화폐 ‘에클코인’을 개발해 국민적 영웅이 된 미스터리한 인물. 상류 사회를 향한 갈망과 분노, 그 꼬이고 비틀린 모순된 감정을 추동력 삼아 속도감 있게 서사를 전개한다.

조선일보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밝을까, 어두울까? 최근 출간된 2024년의 'K세태소설'들은 계층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선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욕망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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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욕망을 파헤치다

‘시티 뷰’는 인천 송도로 옮겨 간다. 국제도시로 불리는 송도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중년의 중상류층 부부와 불안정한 생계를 이어가는 2030 청년, 생존을 위협받는 도시 외곽 공단의 이주 노동자 등 여러 계층의 욕망과 상처를 다룬다.

중년의 위기를 겪는 수미·석진 부부는 ‘맞바람’을 피운다. 수미는 연하남 헬스 트레이너를 애인으로 두고, 치과 의사 석진은 자꾸 병원을 찾는 한 환자에게 끌린다. 이들의 불륜 이야기는 아침 드라마감이지만, 욕망의 결은 입체적이다. 납작한 통속소설은 아니라는 뜻. 우신영은 “현대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돈과 성(性)” 이라고 했다. 그 공식에 충실하다.

소설가는 올 초까지 인천대 국어교육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송도에서 직접 살았던 경험이 녹아들었다. 고층 아파트 유리창을 닦다가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들 기사를 자주 접한 그는 “학생들에게 ‘난쏘공(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가르치며 소설 속 철거 계고장을 읽어주기엔 스스로가 못나 보였다. 책상물림의 부채감을 덜고 싶은 마음이 집필 계기라면 계기”라고 했다.

◇상류층 진입 위한 무한 경쟁

‘아찰란 피크닉’은 계층 상승의 욕망을 우화로 그렸다. 2099년의 ‘아찰라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먼지와 어둠으로 가득한 아찰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경쟁한다. 종평(종합 적합도 평가) 1등급을 받으면 상류층만 거주 자격을 가질 수 있는 자치구 헤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은 물론 말투, 외모, 인성 등 모든 것이 평가 대상이다.

앞선 두 소설처럼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삼지는 않았다. 엄밀한 의미에서의 세태소설이라 보긴 어렵다. 좋은 대학에 가려고 유치원 때부터 스펙을 쌓는 한국의 상황이 겹쳐 보인다는 점에서 ‘K세태’를 다룬 소설이라고 봄직하다. 시험의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피라미드 꼭대기를 향해 뛰어 올라가는 장면이 클라이맥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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