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 출발 뒤 두 번째 와인잔을 기울일 때쯤 꽃무늬 한복을 입은 국악인 박혜정씨가 이벤트 칸 한가운데에 설치된 무대에 올랐다. 평소라면 당연히 조용했어야만 할 열차는 금세 흥겨운 국악 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9월 24일 영동국악와인열차에서 공연 중인 국악인 박혜정 씨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와인과 국악이 어우러진 ‘충북영동국악와인열차’
이 열차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12가지 관광전용열차 중 하나인 ‘충북영동국악와인열차’다. 영동군이 2005년 국내 유일의 포도·와인산업 특구로 지정된 이후 2006년 12월 서울∼영동 구간에서 운행이 시작됐다. 2009년 ‘와인인삼열차’로 시작으로 2011년 ‘와인시네마열차’를 거쳐 2018년 2월 와인에 국악을 접목한 현재의 국악와인열차가 됐다. 이는 왕산악, 우륵과 함께 한국의 3대 악성으로 추앙받는 난계 박연(1378∼1458)의 탄생지가 영동군이라는 점에서 착안했다.
이 열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인 2020년 초부터 약 2년간 운행을 중단했다가 2022년 5월 다시 운영됐다. 총 7량(객실 6량)으로 주 2∼3회 운행하는 이 열차에는 2022년 2만4536명, 지난해 4만1288명이 탑승하는 등 인기를 더해가고 있다. 올해 1∼8월에는 3만1636명이 이용했다.
현재는 당일치기인 서울∼영동 코스 외에도 계절별로 남원, 순천, 동해 등 다른 지역에도 열차를 투입하는 1박 2일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경기 파주시에서 왔다는 지모(60·여)씨는 “오면서 와인하고 풍경 사진들을 가족들에게 공유했는데 다들 다음에 같이 오자고 했다”며 “10만원 정도인 금액을 고려하더라도 한 번쯤 더 올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와인과 국악에 흠뻑 취해 영동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어느덧 점심이었다. 역 앞에 대기 중인 버스를 타고 약 10분을 달려 식사 장소인 1996년 국내 최초 기업형 와이너리인 ‘와인코리아’에 도착했다.
영동국악와인열차 외관.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와인열차 타고 영동군 정착 결심해”
식사를 마친 후 농가형 와이너리에 방문해 캠벨, 머루 등 한국 포도 품종으로 만든 다양한 와인을 시음했다. 국악와인열차 운영사인 코레일 협력여행사 ‘행복을주는사람들’의 원종혁 이사는 "아침부터 와인으로 시작해 식사마다 곁들일 수 있어 딱 세 번만 취했다가 깨면 집에 돌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국악와인열차는 정부와 코레일 등이 지난달 영동군 등 전국 23곳 인구감소지역의 생활인구 활성화를 위해 선보인 ‘다시 잇는 대한민국, 지역사랑 철도여행’ 관광 상품에 포함됐다. 이러한 홍보 덕분에 최근 영동군 방문객 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영동군의 와이너리와 카페 등의 이용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는 디지털 관광주민증을 보유한 ‘명예 주민’은 지난 6월 발급 시작 이후 약 3달 만에 5만명을 넘었다.
영동국악와인열차에 준비된 샤인머스캣으로 빚은 화이트와인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이 열차를 통해 영동군에 정착하게 됐다는 주민도 만날 수 있었다. 와이너리 농가 체험 뒤 방문한 레인보우 힐링센터에서 만난 권모(66·여)씨는 “몇 년 전 와인열차를 타고 처음 영동을 왔는데 너무 좋아서 살아보려고 전셋집을 구해 현재는 영동군민이 됐다”며 “과일이 풍부하고, 복지도 너무 좋고, 우리나라 가운데에 위치해 교통도 편리해서 살기가 너무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영동군 인구는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1965년 12만4000여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1990년 7만6000여명, 2010년 5만600명 등으로 꾸준히 감소해 왔다. 2019년 5만명 선이 깨진 뒤에도 내림세가 이어져 지난달 4만3000여명까지 줄었다.
국내 최초 기업형 와이너리인 ‘와인코리아’ 입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김영환 영동군 관광과 주무관은 “여기서 근무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막내다. 아이가 둘인데 매년 학교 학급이 두 개씩 줄어든다”면서도 “국악와인열차와 연계한 관광 활성화를 통해 인구 위기 극복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채명준 기자 MIJustic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