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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독일 난민캠프 수조원 예산, 하청-재하청 짬짜미로 기업에 ‘줄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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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독일 베를린의 옛 테겔공항 활주로에 지은 난민 도착센터의 대형 텐트 앞에 줄을 서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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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천막 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천막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과 환자들 380명이 뒤섞여 산다. 잠은 14명씩 무리 지어진 구획 안에서 잔다. 기침하는 사람, 우는 아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 쥐와 해충들이 돌아다니고 수두와 홍역이 창궐한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의 슬럼가나 난민촌 풍경이 아니다. 지난달 말 독일 슈피겔이 전한 베를린 ‘테겔 우크라이나 난민 도착센터’의 풍경이다.



원래 이 시설의 이름은 ‘테겔 오토 릴리엔탈 공항’이었다. 세계 최초의 비행기 제작사를 만든 ‘항공의 아버지’ 오토 릴리엔탈의 이름을 딴 이 공항은 베를린 도심에서 북서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육각형 모양의 메인 터미널은 1948년에 지었다. 동서 갈등의 시대에 테겔은 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통로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도 30년 동안 ‘통일 수도’의 관문 구실을 했다.



브란덴부르크 신공항의 개장과 함께 2020년 11월 공항으로서 테겔의 수명은 끝났다. 베를린 주정부는 문 닫은 공항을 랜드마크로 유지하면서 첨단과학 연구기지로 재개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번지면서 낡은 터미널 건물은 백신 접종센터로 쓰였다. 그러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테겔은 난민들의 피난처가 됐으며 45개의 대형 천막이 터미널을 에워쌌다.





아웃소싱 보안업체에만 1900억원





테겔 캠프에 있는 이들의 평균 체류 기간은 200일, 어떤 이들은 1년이 넘는다. 우크라이나인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도 이곳에 머문다. 출입을 하려면 큐알(QR·정보무늬) 코드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하고, 천막에 드나들 때마다 ‘스캔’을 당한다. 무작위 가방 검사나 침대 뒤지기는 기본이다. 난민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다. 이민국이나 직업센터와 면담하기까지 몇달이 걸린다. 거주허가나 취업허가를 바라는 난민들에게 관리들은 전쟁 통에 가지고 나올 수 없었던 수많은 서류를 요구한다. 올 3월에는 텐트 하나에서 불이 났다. 거기 머물렀던 난민들은 출생증명서와 여권, 그리고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잃었다.



더러운 샤워실, 배설물로 막힌 화장실, 싸구려 배급 음식들에 해마다 거의 5억유로(약 7300억원), 현재 수용 중인 5천명의 난민 한명당 하루에 약 250유로(37만원)가 들어간다. 이유는 하청-재하청 구조에 있다. 베를린주 난민사무국은 2022년 독일적십자사에 캠프 운영을 맡겼다. 당국이 올해 내준 돈만 2억1600만유로다. 적십자사는 소규모 구호단체들에 일부 임무를 맡기고, 보안과 운영은 무역박람회 운영회사인 메세베를린에 넘겼다. 2019년 50만유로 적자를 봤던 회사가 작년에는 750만유로의 이익을 거뒀다. 정작 업무의 질은 형편없다. 난민들의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보안직원들의 인종주의적 태도였다. 심지어 보안직원들 중에는 이슬람주의자들도 있다. 지난해엔 쿠르드족 난민을 보안직원이 공격한 사건이 보고됐다.



테겔의 보안 예산은 2022년 4300만유로에서 올해 1억3100만유로(약 1900억원)로 늘었는데 메세베를린은 이 돈을 받고 팀플렉스라는 회사에 경비 업무를 아웃소싱했다. 팀플렉스는 수익이 10배 이상 늘었지만 이 회사가 파견한 보안직원들은 저임금 이주노동자이거나 취업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고, 상당수는 독일어조차 못한다.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이어지는 고리마다 지역 보안 업체나 메세베를린과 연결된 전직 공무원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독일인들은 ‘우리 세금을 난민들에게 쓴다’고 반발하지만 실상은 지방정부와 결탁한 기업들에 돈이 흘러가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보면 2023년 12월 말 기준으로 독일에서 1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임시보호 등록을 했다. 망명 신청 건수는 연간 35만2천명이었고 난민이나 보호대상자로 결정된 비율은 68.6%였다. 다른 나라를 거쳐 온 이들의 ‘재정착’도 지난해 6500명에 이르렀고 비슷한 수가 올해에도 독일에 터를 잡게 된다. 독일은 작년에 4억3600만달러(약 5750억원)를 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한 주요 기부국이다. 2010년대 중반 이른바 ‘시리아 난민 사태’가 벌어졌을 때 독일은 유럽연합(EU)의 난민정책을 주도하며 수용 시스템을 정비했다. 아프간에서 탈레반이 2021년 재집권하고 이듬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난민이 또 한 차례 급증했다. 2022년 독일의 대도시에 테겔 캠프 같은 긴급보호소들이 다시 세워졌다.



한겨레

지난 6월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맞아 독일 베를린 루스트가르텐 광장에 난민선을 상징하는 대형 종이배들이 놓여 있다. 노동자 복지단체 아베오(AWO) 작센안할트가 다양한 시민사회와 1억명이 넘는 난민의 연대 행동의 하나로 마련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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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한 시스템, 운영은 뒤죽박죽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를 위한 재정은 일차적으로 지방정부의 책임이지만 연방정부도 돈을 낸다. 지난해 연방정부가 난민을 위해 쓴 돈은 28억유로(약 4조1천억원)였다. 500명도 안 되는 예멘 난민 앞에서 우왕좌왕했던 한국에 비하면, 독일은 정교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난민들이 먼저 초기접수센터에서 보호 신청을 한 뒤 최대 2년 동안 머물며 절차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16개 연방 주마다 최소 1개 이상, 전국에 58개 센터가 있다. 올 초 접수센터 중 일부는 전국 12개 ‘도착센터’와 3개 ‘앙커(AnkER)센터’에 합쳐졌다.



도착센터에서는 난민들에게 ‘패스트트랙’을 적용해주기로 했지만 절차가 법규로 정해져 있지는 않다. 앙커센터는 난민 수용 절차를 통합하기 위해서 2021년부터 만들어졌고 현재 바이에른, 작센, 자를란트 등 9개 주에서 운영되고 있다. 접수센터를 나간 이들은 그 주의 공동 숙소로 가게 된다. 공동 숙소 중 어떤 곳은 30명, 어떤 곳은 수백명을 수용한다. 시설의 질은 천차만별이고 운영기관도 제각각이다. 바이에른이나 함부르크 등에서는 임시 보호를 받는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들이 공동 숙소에 살지만 라인란트팔츠주나 니더작센주에서는 주로 개인 아파트들 같은 ‘분산형 숙소’에 머문다.



최근 베를린 주정부는 부촌인 샤를로텐부르크빌머스도르프의 사무실 단지를 난민용으로 개조해 1500명을 보낸다는 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공항이든 사무실 단지든 일시적인 거주지일 뿐이다. 주택난이 가뜩이나 심한 베를린에서, 난민들이 빌릴 만한 임대료 싼 집은 드물다. 주의회는 궁여지책으로 일단 테겔 캠프의 규모를 키우고 내년 말까지 운영을 연장하기로 했다. 2022년 7월 900명이 사는 텐트로 시작된 테겔 캠프의 주민이 내년에는 8천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해가 지나면 상황은 달라질까? 최근 작센, 튀링겐, 브란덴부르크 3개 주 선거에서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득세하는 등 반이민, 반난민 정서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테겔의 난민들은 나갈 곳을 찾을 수 있을까.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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