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카운티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왼쪽)의 유세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오후 6시 11분이네요. 총격이 있은 지 딱 12주가 되는 시간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 침묵의 시간을 가집시다.”

5일 펜실베이니아주(州) 버틀러 카운티를 찾은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공화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옷에 성조기를 두른 채로 대형 박람회장인 ‘버틀러 팜 쇼’의 야외 현장을 가득 메운 6만 인파가 침묵에 들었다. 지난 7월 13일 트럼프는 같은 장소에서 연설하던 중 20세 남성 토머스 크룩스에 총격을 당했지만, 총알이 오른쪽 귀 윗부분을 관통하며 구사일생했다. 당시 유세를 지켜보던 전직 의용 소방대장 출신 코리 콤퍼라토레는 목숨을 잃었는데, 여기에 애도의 뜻을 표한 것이다. 뒤이어 한 테너가 무대에 올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를 불렀다.

트럼프가 총격 현장인 버틀러 카운티에 정확히 12주 만에 돌아왔다. 총 19명의 선거인단이 걸려있는 펜실베이니아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공화 두 후보의 명운(命運)을 좌우할 승부처다. 필라델피아나 피츠버그 같은 대도시권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하기 때문에 트럼프는 카운티라 불리는 시골 지역에서 한 표라도 더 많이 얻는 게 중요하다. 버틀러 카운티는 4년 전 대선에서 트럼프가 65.6%의 득표율로 33.1% 득표에 그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두 배 가까이 압도했다. 이날 트럼프의 유세에는 러닝메이트인 J D 밴스 상원의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에 거액을 후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헤지펀드 거물인 억만장자 존 폴슨, 유세곡 ‘갓 블레스 더 USA’를 부른 가수 리 그린우드, 둘째 며느리이자 선거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라라 트럼프 공화당전국위원회 공동 의장 등이 총출동했다. 그야말로 ‘금의환향’을 한 셈이다. 지지자들은 두 차례 총격 사건 이후 트럼프를 상징하는 구호가 된 “싸우자(fight)”란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카운티 유세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럼프는 연설에서 “지난 8년 동안 우리의 미래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고, 탄핵하려 하고, 기소하고, 심지어 죽이려 했다”며 “나는 여러분들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이 현명하다면 나라 밖의 적(敵)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러시아·중국·북한 등은 우리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한 내부의 적이 있다”고도 했다. 피격 사건 후 수장이 퇴진하는 등 홍역을 치른 비밀경호국(SS)은 이날 연단 주변에 방탄 유리를 설치하는 7월 유세 때에 비해 한층 강화된 경호 수준을 적용했다. 인근 건물 지붕 곳곳에는 무장한 경호 요원과 경찰, 저격수가 배치됐고 하늘에는 경찰 헬리콥터와 드론이 날라다녔다. 트럼프는 크룩스를 “사악한 괴물”이라 표현하며 “하나님의 은혜, 섭리의 손길에 의해 그 악당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우리 운동을 중단시키지도 못했다”고 했다.

트럼프는 이날 바이든과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에 대해 “역대 최악의 대통령과 부통령”이라고 했다. 지역의 중요 현안인 프래킹(fracking·셰일가스 추출을 위한 수압파쇄법)에 대한 해리스의 말 바꾸기, 불법 이민과 국경 문제, 허리케인 헬린을 둘러싼 바이든 정부 난맥상 등을 하나하나 짚으며 특유의 톤으로 발언을 이어 나갔다. 트럼프는 지난 1일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 민주당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를 상대로 선전한 밴스에 대해서는 “엄청난 일을 해냈다”며 “나는 나의 선택에 대해 항상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또 미주리가 지역구인 에릭 슈미트 상원의원을 언급하며 “우리는 상원에서 몇 석을 더 얻어야 한다”고 했는데, 11월 선거 결과에 따라 공화당이 대선은 물론 상·하원을 싹쓸이하게 될 수도 있다. 트럼프가 연설하던 중 한 관람석에서 환자가 발생해 유세가 몇 분 중단됐는데, 의료진이 대응하는 와중에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육성(肉聲)으로 미국 국가를 부르는 모습도 연출됐다.

트럼프는 이날 연설 도중 머스크를 호명해 무대로 올렸다. 머스크는 ‘화성 점령(occupy mars)’이라 적힌 셔츠에 검은색 자켓을 입었는데, 평소 대중 연설을 할 때 차분한 모습을 보였던 것과 달리 “싸우자! 싸우자!” “투표하자! 투표하자!”라고 거듭 외쳤다. 그는 트럼프가 지난 7월 귀에 총을 맞고도 청중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던 모습을 상기시키며 “미국은 용기 있는 자들의 땅이고 누가 우리를 대표하길 원하냐” “이번 대선은 그냥 선거가 아닌 일생일대의 이벤트다” “헌법과 민주주의, 미국을 수호하기 위해선 트럼프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다른 후보는 여러분에게서 자유를 빼앗으려 한다”고 했다. 머스크가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함성이 쏟아졌고, 트럼프는 머스크 왼쪽에 서서 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5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 카운티의 유세 무대에 오르자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