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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교통비 써가며 왕복 4시간”…기피시설 된 예비군 훈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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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예비군들이 지난해 3월 경기도 안산시 상록 과학화 예비군 훈련장에서 시가지 전술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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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에 사는 3년차 예비군 하재민(26)씨는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약 45㎞ 떨어진 경기도 포천 훈련장까지 간다. 하씨는 “예비군 훈련장까지 가는 버스가 몇대 없고 배차 간격이 길어 버스를 놓치기라도 하면 택시를 타야 해 부담이 너무 크다”며 “훈련장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탄다”고 했다. 하씨가 예비군 훈련을 한번 받을 때마다 치르는 교통비는 버스비 왕복 2900원, 택시비 왕복 2만원을 더한 2만3천원이다. 예비군에게 지급하는 교통비(8천원)를 훌쩍 넘긴다. 만약 택시만 이용한다면 훈련장까지 가는 편도 요금은 약 4만원이다.



하씨가 포천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는 이유는 의정부에 예비군 훈련장이 없기 때문이다. 의정부 호원동에 예비군 훈련장이 있었지만, 서울 지역 예비군이 훈련받던 장소인데다 관할 부대가 철수하면서 2019년부터는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에 의정부 예비군은 하씨처럼 포천으로 가거나 경기도 양주에서 훈련을 받는다. 동원 미지정자와 동원 훈련 연기자가 받는 동원미참가자훈련(동미참훈련)은 1년에 한번 주 4회를 받는데, 매번 왕복 약 3~4시간을 오가야 하는 셈이다. 더욱이 동미참훈련은 입소 시간(오전 9시)보다 1분이라도 늦을 경우 불참 처리되고 세번 불참하면 형사고발까지 당한다. 하씨는 “제발 예비군 훈련장이 가까이 있으면 좋겠다”며 “저희에게는 절박한 문제”라고 했다.



하씨의 바람과 달리 ‘의정부 예비군 훈련장’ 설치는 난항을 겪고 있다. 김동근 의정부시장은 호원동 예비군 훈련장을 관외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으나, 국방부와 협의 끝에 관내 이전으로 방향을 돌렸다. 의정부 지역 예비군만 사용한다는 조건을 달았음에도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다. 의정부시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훈련장 부지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예비군 훈련장 기피’ 현상은 의정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기도 고양시는 지난 8월 일산서구 대화동 예비군 훈련장과 관련해 육군 제1군단과 “개발 사업 등에 따른 이전 필요성이 제기될 경우 예비군 훈련장을 이전한다는 조건”하에 훈련장 과학화 사업에 동의했다. 과학화 사업은 예비군 교육시설을 실내화하고 사격장 안전을 강화하는 등 예비군의 안전과 훈련 효율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시설이 현대화할 경우 훈련장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주민 반발에 부딪힌 상황이다. 경기도 의왕시는 2015년 대표적인 기피시설로 꼽히는 안양교도소와 내손동 예비군 훈련장 교환을 시도했을 정도다.



예비군 훈련장을 둘러싼 갈등은 수도권 과밀화 영향이 크다. 과거엔 훈련장이 주거지와 먼 곳에 조성됐지만, 인구가 몰리면서 훈련장 인근에 주거지가 들어온 것이다. 실제 호원동 예비군 훈련장 조성 당시인 1970년대엔 주변이 논밭이었지만 1990년대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섰고 2002년 인구 6만명을 넘어섰다. 이로 인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사격 소음, 안전사고 우려, 교통 혼잡 등의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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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에 있는 과학화 예비군 훈련장에서 지난 3월 예비군들이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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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 기피가 심해지자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대책을 내놓고 있다. 서울시는 수도권 내 예비군 훈련장이 갈수록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실에 맞춰 지난해 조례를 제정해 서울에 사는 예비군이 이용할 수 있는 수송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의정부는 새로 조성할 예비군 훈련장을 통제구역-부분개방구역-완전개방구역으로 나눠 완전개방구역에 공원, 체육시설, 물놀이장 등을 조성하고 인근에 아이티(IT)·스타트업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이다. 김 시장은 “관내 존치로 가닥을 잡은 상황에서 시민공론장을 통해 시민 주도 아래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전 대상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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