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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기고]日총리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다시 봐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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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4일 일본 국회에서 취임 후 첫 소신 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일본 NHK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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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새 총리가 취임하면서 한일관계의 진전에 대한 기대가 나오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신임 총리는 첫 국회연설에서 "한일 양국의 협력을 더욱 견고하고 폭넓게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과거사 문제로 역주행까지 겪었던 한국과 일본이 미래를 향해 협력한다면 양국 모두에 이득이 될 것이다. 특히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다.

한일 양국은 현재 모두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북한의 핵무기 도발 위협 등으로부터 심각한 안보 불안을 겪고 있다. 이런 점에서 방위정책 전문가인 이시바 신임 총리의 등장과 그가 제시한 외교안보 전략 구상은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시바 총리의 안보 관련 정책은 지난달 25일 미국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에 게재된 기고문에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제목은 '일본의 외교정책의 장래'이다. 이 글에서 이시바 총리가 던진 화두는 '아시아판 나토(NATO)'의 창설이다. 물론 일본 외무성이 당장 추진하지는 않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구상이라고 보는 것이 더 현실적일 것이다.

그의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었다면 러시아의 침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아시아에도 집단안보체제를 결성해 중국과 북한의 무력 공격 위협에 대응하자는 논리다. 글에는 '아시아판 나토'의 예상 참가국이 명시되지 않았다. 이시바 총리의 과거 발언을 통해 유추해 보면, 미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해 한국,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등이 감안 됐을 것으로 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의 조약 5조에는 "한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명기돼 있다. 만약 아시아에도 나토 같은 집단안보기구가 존재한다면, 일본이 중국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군이 참전하는 상황이 우선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도 회원국이라면 일본 편에 서서 군사적 지원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북한의 공격을 받을 경우에는 일본 자위대도 참전할 수 있게 된다.

생각보다 예민한 문제다. 집단안보의 장점도 많이 있겠지만 그 이득을 보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리 외교부가 "현 단계에서 언급할 사항은 없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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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사진 가운데 왼쪽)가 지난 8월 13일 당시 의원 자격으로 타이완을 방문해 라이칭더 타이완 총통을 만났다. 타이완 총통부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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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아시아판 나토' 구상에는 부정적이다. 국무부의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달 17일 미국의 싱크탱크 스팀슨센터가 주최한 포럼에서 "아시아에서 집단안보기구를 창설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커트 캠밸 국무부 부장관도 지난 4월 22일 "인도태평양 국가를 나토와 같은 공식적인 방위체로 통합하자는 실질적인 제안은 없으며, 그것은 논의되거나 거론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대신 미일동맹 한미동맹 등 일대일 동맹에 한미일 3국 안보협력, 쿼드(QUAD), 오커스(AUKUS) 등 소다자 협의체를 보강하는 방식의 현재 전략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시아판 나토'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이른바 '연루'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굳이 집단안전보장의 책임을 떠안아 아시아에서 원하지 않는 전쟁에까지 휘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현재처럼 소지역별, 사안별로 분화된 동맹 시스템 하에서 좀더 융통성 있게 대응할 여지가 있다. 필요할 경우 개별 동맹국을 설득해 개입의 수준이나 범위를 조절할 수도 있고, 확전 가능성이 잠재된 국지적 충돌은 중국과 물밑 거래를 통해 예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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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상을 역임한 이시바 총리가 지난 2006년 쓴 저서 『국방』. 이시바 총리는 이 책에서 북한의 미사일 방어 대책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시바 총리 개인 블로그 캡처



일본이 이런 미국의 입장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아시아판 나토'를 새 외교전략의 핵심으로 꺼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시바 총리는 한발 더 나아가 미국에 대등한 동맹 관계를 맺자고 요구했다. 비대칭적 미일 관계를 이제는 끝내자는 것이다. 대신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자유주의 질서를 공동으로 방어하겠다고 제안했다. 아예 일본의 자위대를 미국령 괌에 주둔시키자는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시바 총리의 이런 파격적 구상이 일본을 군사대국으로 만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싱가포르 매체 CNA는 지난 3일 전문가 논평을 통해 "이시바 총리 말고 '아시아판 나토' 구상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며 일침을 가했다. 이시바 총리의 목표가 자위대의 해외 참전을 용이하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현재 일본 자위대는 헌법과 법률에 따라 미국이 공격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나라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시바 정권이 '아시아판 나토'와 '대등한 미일 동맹'이라는 전망을 띄워 국내에서 이런 장벽의 제거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도 무리가 아니다.

관건은 미국의 태도 변화 여부다. 미국은 '아시아판 나토'의 창설에 대해서는 여러 번 반대 입장을 밝혔다. 미일 동맹을 미영 동맹처럼 대등한 관계로 격상하자는 주장도 글로벌 패권국인 미국으로서는 거부감이 들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따른 아시아의 안보 부담을 일본에 지속적으로 떠넘겨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특히 미중 전략 경쟁이 시작된 이후 일본은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기본 개념까지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때인 지난 2017년 창설된 미국·일본·인도·호주 4개국 협의체 쿼드(QUAD)는 아베 전 총리의 이른바 '전략적 다이아몬드' 구상을 미국이 실현시킨 대표적 사례다. 미국 국무부는 아베 전 총리가 공식 전략으로 채택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 태평양(FOIP)'이라는 개념을 나중에 공식 문서로 발표하기도 했다.

물론 일본의 '아시아판 나토' 구상이 단기간에 실현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하지만 일본이 이 구상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미국과 일본이 절충한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 가까운 장래에 한국에 내밀 수도 있다.

*저자는 YTN 베이징 특파원과 해설위원실장을 지내는 등 30년 동안 언론계에 몸담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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