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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영주 무섬마을 만죽재·해우당 고택,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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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 고택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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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서 유서 깊은 전통마을인 '영주 무섬마을' 내 대표 고택 2곳이 국가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7일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과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각각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

먼저 만죽재 고택은 병자호란 이후인 1666년 반남박씨 집안의 박수(1641~1729)가 마을에 들어와 터를 잡으면서 지은 집으로, 13대에 이르기까지 360여년간 집터와 가옥이 온전히 보존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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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죽재 안대청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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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안채, 사랑채, 부속채 등이 연결된 'ㅁ'자형의 주택이다. ㅁ자형 평면 형태는 조선 중·후기 상류주택을 대표하는 유교적 종법질서의 표현 방법으로 경북 북부지방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뜰집의 전형적 형태다.

교육과 시문학의 장소로 사용됐던 고택 뒤 섬계초당은 내성천과 무섬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으며, 2008년 새롭게 복원돼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고택과 함께, 만죽재 현판과 원본글씨, 문방사우(종이·붓·먹·벼루), 여물통, 통나무계단 등 생활 민속유물이 잘 남아 있다. 대표적인 유물인 역대 혼서지, 항일격문집, 규방가사집, 호구단자, 승경도 등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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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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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고택은 선성김씨 집안에서 마을에 처음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김대(1732~1809)의 손자 김영각(1809~1876)이 1800년대 초반에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인 해우당 김낙풍(1825~1900)이 1877~1879년에 고택을 수리한 이후 해체하거나 수리한 적이 없어 150년 가까이 원형이 잘 보존돼 왔다.

김낙풍은 고종(재위 1863~1907)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친구로, 현재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쓴 친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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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현판 [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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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은 'ㅁ'자형 뜰집으로 이뤄져 있다. 국가유산청은 "안방에서 태어나서 목방, 작은사랑, 큰사랑, 빈소방으로 옮겨가는 생애주기와 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특히, 침수가 잦았던 무섬마을의 환경적인 결점을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 야외에 장독을 두지 않고 장독 보관을 위한 장고방을 따로 두고, 성주단지를 부엌이나 마루가 아닌 높은 다락에 둔 점, 높은 다락을 많이 만들어 수납공간으로 사용한 점 등은 자연환경을 잘 극복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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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당 사랑채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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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는 김낙풍이 작성한 과거 답안지, 집 건물을 수호한다는 성주를 모셔두는 단지, 갓 보관함 등도 남아 있어 '영주 해우당 고택 및 유물 일괄'로 함께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30일 예고기간 동안 의견 수렴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영주 만죽재 고택 및 유물 일괄'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를 통해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등과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주경제=김다이 기자 dayi@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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