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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돈키호테를 닮은 이시바 日 총리 [오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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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편집자주

우리가 사는 지구촌 곳곳의 다양한 ‘알쓸신잡’ 정보를 각 대륙 전문가들이 전달한다.
한국일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오른쪽)가 지난 4일 도쿄 참의원 회의에 참석해 팔짱을 낀 채 뒤에 앉은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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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치러진 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많은 이들의 예상을 깨고 이시바 시게루(石破 茂)가 당선됐다. 그는 무려 12번이나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위대신, 농림수산대신을 역임했으며 자민당 내에서도 간사장이라는 요직을 맡았던 베테랑 정치인이다. 일본 국민에게는 인기가 많지만, '여당 내 야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쓴 소리'를 서슴지 않는 바람에 당내 입지는 그리 공고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그가 결선 투표에서 역전승을 거둔 것은 의외의 뉴스로 받아들여졌다.

정치자금 스캔들로 국민적 공분을 산 자민당에 쇄신과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만큼 비주류인 이시바의 당선은 자민당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10월 1일, 일본 국회에서 102대 총리로 선출·지명된 그는 일본 전후 역사에서 최단 기간에 국회를 해산한 총리가 됐다. 취임 후 불과 8일만인 9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27일 총선거(15일 공고)를 치르기로 했다.

이를 두고 입헌민주당 등 일본 야당들은 거세게 비판했다. 4일 국회에서 진행된 이시바 신임 총리의 소신표명 연설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당리당략으로 국회를 해산하려는 이시바는 거짓말쟁이라는 비난이었다. 이 와중에 여당인 자민당 의원들은 강 건너 불구경인하는 것처럼, 이시바 총리에 힘을 보태지 않았다. 약한 당내 입지를 재확인시켜 주는 듯해 5수 만에 총리가 된 이시바의 처지가 처량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망의 목소리가 한창 높아지는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6일 정치자금 스캔들로 지난 4월 당 징계를 받은 일부 의원을 총선에서 공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베 신조 전 총리 파벌의 중심인물인 시모무라 하쿠분 전 문부과학대신, 하기우타 고이치 전 자민당 정조회장 등 최소 6명이 대상으로 꼽힌다. 정치자금 수지보고서에 기재가 부족했던 의원 전원에게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 출마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시바 총리의 방침은 현 이시바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 지난 총재 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 되었던 고이즈미 신지로 선거대책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난 결과이다. 소위 '비 아베파' 연대가 형성된 형국인데, 과거 아베파와 아소파의 세력이 여전히 강한 가운데, 어떤 역학 구도가 형성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95대 총리를 지낸 노다 요시히코 신임 총재가 이끄는 입헌민주당은 자민당의 무공천으로 공백이 발생할 지역에서 승기를 잡아 현재 99석인 중의원 의석수를 최대한 늘려보겠다는 전략이다. 총 465석인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을 노리는 자민당(현 258석)에게도 퇴로는 없다. 정치자금 문제가 걸린 의원들의 공천 배제에 따른 정치적 리스크를 극복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당의 혁신을 보여줘야 한다. 그 성공 여부가 이시바 총리와 자민당 총재의 정치적 생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다.

이시바의 승부수가 돈키호테식 슬픈 결말이 될지, 주의깊에 지켜봐야 할 향후 20일이다.
한국일보

임은정 국립공주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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