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프랑스 정부가 연일 가자지구 전쟁 관련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를 촉구하며 유럽이 이스라엘의 최대 무기 공급국인 미국과 다른 길을 갈지 주목된다. 두 번째로 큰 무기 공급국인 독일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승인은 올해 눈에 띄게 줄었고 영국은 지난달 국제인도법 위반 위험이 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일부 무기 수출 허가를 정지했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방문한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7일(이하 현지시각) 예루살렘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오늘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인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선 무력 사용이 대화와 외교로 대체돼야 한다"며 "이는 프랑스가 세계 대부분 국가와 마찬가지로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휴전을 촉구하는 이유다. 그리고 휴전을 촉구하면서 동시에 교전 세력에게 공격 무기를 제공할 순 없다. 이는 일관성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군사적 성공은 정치적 관점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5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프랑스 앵테르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 전투에서 사용되는 무기 공급 중단"을 촉구한 데 이은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이 이란이 이끄는 야만 세력과 싸우고 있는 지금 모든 문명국들은 단호히 이스라엘 편에 서야 한다"며 "마크롱 대통령과 일부 서방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를 촉구하고 있는데 이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즉각 반발한 바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 3일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2019~2023년 이스라엘은 대부분의 무기를 미국에서 공급 받았다. 미국은 이 기간 이스라엘 무기 수입의 69%를 차지하며 항공기, 장갑차, 미사일, 함선 등 다양한 주요 무기를 공급했다. 따라서 마크롱 대통령의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 촉구는 미국을 향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멈추지 않고 있다.
같은 기간 독일이 미국에 이어 이스라엘에 대한 두 번째 무기 공급국(30%)이었고 뒤이어 이탈리아가 0.9%를 공급했다. 연구소는 이 기간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주요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지만 무기 부품은 공급했다고 설명했다.
연구소에 따르면 2019~2023년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15번째로 무기를 많이 수입했다. 10년 전(2009~2013) 47위였던 데 비해 무기 수입이 크게 늘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프랑스 외교 전문가 림 몸타즈가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이 미 행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군사 지원 관련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가 하고 있는 일은 프랑스와 유럽이 미국과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를 습격해 1200명을 죽였을 때 유럽연합(EU)은 미국 못지 않게 단결해 이스라엘을 지지했지만 가자지구에서 약 4만2000명이 살해된 현재 양쪽 관계는 전례없이 흔들리고 있다고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은 짚었다.
이스라엘의 주요 무기 공급국이자 홀로코스트(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 원죄 탓에 이스라엘 편에 서는 것이 "국가 이성(Staatsräson)"이라고 주창해 온 독일조차 전쟁이 반년 째 접어들 무렵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하마스 습격 뒤 "독일이 있을 자리는 이스라엘 옆 뿐"이라며 가장 먼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보냈던 서방 지도자 중 하나였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3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아무리 중요한 목표라 해도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며 가자지구 작전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같은 달 이스라엘을 방문한 아날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도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은 "지옥"이며 이스라엘이 "테러 각본"을 따라선 안 된다고 촉구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맹목적 지지로 중동에서 독일의 외교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전까진 독일이 역사적 이유로 이스라엘을 지지하더라도 이 지역에 대한 식민 통치 이력이 없고 경제 분야에선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 시리아 난민 수용에 적극적인 인권 수호자라는 인식이 아랍 국가들 사이에 있었다면 현재는 그 위상이 침식됐다는 것이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지난 5월 독일과 아랍권의 관계를 연구하는 모로코에 기반을 둔 사회학자 암로 알리가 대중의 독일에 대한 인식이 180도 바뀌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알리는 아랍권 젊은이들이 소셜미디어(SNS)에 매일 독일에 관한 글을 올리는데 그 중 긍정적인 글은 전무하다며 이는 이전엔 보지 못한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매체는 중동 내 독일 기관에서 일하는, 혹은 일했던 이들이 가자지구 전쟁에 대한 독일의 강경한 입장으로 인해 현지 파트너 및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위태로워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여론 변화가 정치·경제 관계에 영향을 주진 않더라도 독일의 역내 소프트파워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의 태도 변화가 무기 공급에까지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독일은 공식적으론 관련 정책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독일 정부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외신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승인이 감소한 것을 들어 독일이 조용히 수출을 줄이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19일 <로이터>는 독일 경제부 통계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해 이스라엘에 대한 3억2650만유로(약 4840억원) 규모의 무기 수출을 승인했지만 올해 8월21까지 승인 규모는 1450만유로(215억원)에 불과했다고 보도했다. 이 중 전쟁 무기 범주는 3만2449유로(4800만원)로 극히 일부다.
통신은 독일 경제부와 가까운 소식통이 정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국제인도법 위반 소송 관련 법적·정치적 압력으로 현재 독일이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수출 허가 작업을 중단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영국도 지난달 초 국제인도법 위반 위험이 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350건의 무기 수출 허가 중 30건을 정지했다.
최대 무기 공급국인 미국조차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 및 레바논 침공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럽의 무기 수출 관련 태도 변화가 이스라엘의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유럽이 이스라엘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력은 상당하다는 평가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으로 이스라엘 수입의 31.9%, 수출의 25.6%를 담당했다. 반면 유럽연합 입장에서 같은 기간 이스라엘은 무역의 0.8%만을 담당했다.
도이체벨레는 이런 측면에서 유럽외교위원회(ECFR) 중동 전문가 휴 로바트가 "유럽연합의 문제는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 부족이 아니라 내부 합의 결여"라고 지적했다고 설명했다.
7일 유럽의회에서 가자지구 전쟁 1년을 맞아 연설한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비극은 외교 정책을 결정하는 회원국들 사이 깊은 분열로 유럽이 이 갈등에서 부재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유엔(UN)에서 관련 투표가 벌어지면 회원국이 각기 다른 표를 던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휴전 필요성을 강조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금수를 촉구한 마크롱 대통령을 언급하기도 했다.
반면 미국에선 대선을 한 달 앞두고 영향력이 더욱 줄어든 조 바이든 정부가 휴전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7일 미 CNN 방송은 미 당국자들이 미국이 현재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 간 휴전 협상을 적극 되살리려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이들을 인용해 미국이 적대 행위 중단보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작전을 구체화하고 제한하는 입장으로 물러났다고 전했다.
▲5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어권 국제기구 프랑코포니 정상회의 폐막 세션 마지막 무렵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기자회견에 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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