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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북촌 파고든 기업형 숙박·변종 카페…못 견딘 주민이 떠나고 있다 [김은미가 소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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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광우선 정책의 폐해

놀이동산화로 주거의 질 악화

사람사는 한옥마을로 보존해야

중앙일보

서울 북촌 일대에 관광 시설이 늘면서 주거 환경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로구청이 북촌마을지킴이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픽=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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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북촌 주민이다. 얼마 전 북촌 거주민 260여명이 북촌 주거지에 한옥체험업의 이름으로 영업하는 기업형 숙박업을 막아 달라는 연대 서명을 하여 서울시에 제출했다. 키를 쥐고 있는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는 북촌을 거주지로서 보존해야 한다는 수많은 전문가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개발형 패러다임으로 ‘활성화’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은 듯 상업화와 관광지화를 방치하거나 조장하고 있다. 서울시 한복판 이곳의 거주민의 규모는 최근 20년 사이 거의 반 토막 수준이다.

필자가 사는 골목 입구에는 십수 년 한옥을 멋지게 리모델링해가며 사는 교포 부부가 있다. 집 곳곳에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주인장의 솜씨가 넘친다. 하지만 바로 옆에 관광객을 상대로 온종일 케이팝을 트는 가게가 들어왔고 밤낮없이 관광객이 대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문고리를 친다. 부부는 견디지 못해 이주를 생각한다. 길 건너에 살던 후배는 진즉에 이사를 나갔다. 오래된 한옥이 어떻게 이리 신통하게 편리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찬사를 들으며 행복하게 이웃들과 지냈지만, 서울시가 주민들 사는 골목을 도보 관광 경로로 표시하여 관광 지도를 만들고 거주민 골목과 대문 사진을 관광 홍보에 써 댄 탓에 출입조차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어린 자녀를 키우는 이웃은 바로 옆집이 숙박 시설이 되어 늘 하루를 즐기러 온 사람들의 소음에 시달린다. 한옥 밀집 거주지의 파괴는 관광의 문제가 아니다. 비전이 없는 한옥 정책이 가져온 참사다. 글로벌 기업인 에어비앤비도 각국에서 비판과 규제를 받자 거주 환경을 해치지 않도록 주의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서울시는 오히려 나서서 숙박업을 거주지에 퍼뜨리고 여기에 한옥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형국이다. 밀려오는 관광객으로부터 주민을 지키려고 애를 쓰는 지방자치단체의 고심이 해외의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현상으로 보도되지만, 북촌은 정반대로 서울시의 정책이 정주 환경을 나서서 망가뜨린 것이다.



편의시설 줄고 주민 떠나는 악순환



정주 환경이 급전직하한 것은 서울시가 2020년부터 거주민이 사는 골목에 한옥체험업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거주지 상업화의 길을 트면서부터다. 기업형 숙박업이 골목을 파고들고 주거 골목에 카페, 관광상품, 행사대관업이 마구잡이로 밀고 들어왔다. 애초 한옥체험업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술하게 만들어진 문제가 진즉에 간파되었는데도 이를 정비하거나 단속을 벌이기는커녕 거듭된 주민 민원은 구청은 서울시로, 서울시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떠넘기는 식으로 쳇바퀴를 돈 지 오래다.

이 틈을 타 기업형 숙박업은 자본의 힘으로 주민이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한옥을 차지하면서 놀라운 속도로 주민들을 몰아내고 있다. 숙박업이 늘면 거주자의 숫자는 줄고 동네는 거주민의 필요보다는 관광객의 필요에 맞추어 변한다. 이러한 환경은 한층 더 거주를 어렵게 만든다. 숙박업이 거주지에 들어오는 데 따르는 부정적인 외부 효과의 규모나 파괴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우리 고유의 건축 자산인 한옥을 유지하고 진화하는 유일한 길은 실거주에 쓰면서 다양한 일상을 담는 것이다. 전통적인 가옥 구조를 아직도 생활 거주로 쓰고 있는 나라는 거의 한국이 유일하다. 의식주를 오롯이 우리만의 방식으로 담아내는 한옥은 다른 어떤 전통 자산보다 더 특별하기에 거주민을 몰아내면서 단기간에 한옥을 활성화한다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다고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다. 마을을 만드는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망가진 동네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정책이 예견하지 못했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부작용이 파괴적으로 나타나고 가속화할 때 그 폐해가 확산하지 않도록 신속히 조치를 취하는 기민함이 필요하다. 일단 기업형 한옥체험업을 막는 것은 이 부분에 대한 지구단위계획의 수정이다. 지구단위계획은 구청과 서울시가 함께 협력해야 하는 작업으로 서울시 한옥건축자산과가 용도에 관해 수정을 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서울시는 거듭된 민원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시장이 선언한 관광객 유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심기 경호를 하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서울시는 북촌을 놀이동산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거주지로서 보고 있는가.



한옥형 청년임대주택 도입해 볼만



장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주민의 규모를 늘리는 방향으로 모든 정책의 일관성을 맞추는 일이다. 북촌과 서촌 일대에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공공 한옥의 숫자는 상당하다. 이를 관광객을 위한 용도로 활용할 것이 아니라 한옥형 청년임대주택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마침 한옥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작은 한옥을 멋지게 리모델링해서 살고 있는 젊은이들의 유튜브 영상은 큰 관심을 받는다. 국가적인 저출생 문제의 핵심에는 주택문제가 있다. 한옥에 대해 지원하는 보조금을 청년임대주택에 집중하여 서울 한복판에 젊은 가족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거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보건소와 어린이집도 늘려가면서 말이다. 실력이 탄탄한 우리 건축가들이 한옥 리모델링 안을 만들고 북촌 거주민들이 함께 기획에 참여하여 망가진 커뮤니티를 멋지게 되살리는 사업은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한 언론에 “한옥 스테이로 관광객에게 매력적인 체험을 선사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밝힌 서울시에 묻고 싶다. 가족이 살고 있는 집 앞에 늘 깃발을 든 관광객들이 밤낮없이 캐리어를 끌고 동네가 놀이공원처럼 변하여 옆집 앞집이 카페와 웨딩홀이라면 당신은 그곳에 살겠는가.

김은미 북촌 거주자·서울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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