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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전문기자의 窓] 법원 국감은 왜 ‘훈훈’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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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법 농단 때 검찰에 불려간 판사가 100여 명입니다. 제 후배들 중에서도 중앙지검에 갔다 와서 제 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판사가 있었습니다. 그 판사들 지금 뭐 하고 있습니까.”(김승원 민주당 의원)

“아시다시피 재판을 통해서 결론이 난 부분도 있고 현재 계속 재판 중인 부분도 있고 또 아예 기소조차 되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지난 7일 열린 대법원 국정감사. 민주당 김승원 의원이 법원행정처장에게 ‘사법 농단’ 사건을 언급했다. 그는 “각지에 있는 판사들에게서 (사건이 종결되지 않아) ‘불안해서 재판을 못 하겠다’는 제보가 온다. 검사들이 또 자기를 불러서 조사하고 기소할지 모르겠다고 한다. 행정처에서 해소시켜 줘야 한다”고 했다.

이른바 ‘사법 농단’은 법원에 큰 상처를 남겼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개혁’을 명분으로 확대 재생산한 사건이다. 100여 명의 엘리트 판사가 검찰에 불려갔고, ‘내부 고발자’를 자처했던 판사들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됐다. 그런데 ‘양승태 구속이 사법 정의’라고 했던 민주당의 의원이 당시 판사들의 고통과 법적 불안을 언급한 것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상처를 짚어 준 것은 고마운데, 민주당이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국감에서는 법원의 ‘숙원 사업’이 자주 언급됐다.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영장실질심사로 억울하게 구속되는 피해자가 없도록 했듯 압수수색도 사전 심문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행정처장은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했다. ‘압수수색 사전 심문’은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의 무분별한 발부를 통제한다며 도입을 추진하는 제도다. 정 위원장이 “그러면 판사 부족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하자 행정처장은 “그 부분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판사 증원’ 역시 법원이 꾸준히 주장해 오던 것으로, 법개정과 예산 확보에 국회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날 국감 중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법원 관계자들과 법사위원들이 식사를 함께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원장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그동안 법사위가 피감 기관인 법원 관계자들과 국감일에 자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국감에서 날 선 질타 대신 주거니 받거니 하는 훈훈한 대화가 오가고, 국감 중 함께 식사까지 했던 배경은 짐작 가능하다. 이재명 대표의 명운을 가를 수 있는 공직선거법과 위증교사 사건의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으로서는 법원의 ‘비위’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아야 하는 상황이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최근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권력이나 여론의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일방의 칭찬과 비방에 좌고우면하지 않으며 헌법과 법률에 따른 균형 있는 판단을 해야 한다”고 했다. 곧 있을 이재명 대표 선고에서 민주당의 ‘피감 기관 비위 맞추기’가 통할지, 권력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판단이 내려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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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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