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해 56조원 넘는 역대급 세수결손을 메우는 과정에서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2500억원을 빌려 쓴 것과 관련해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는 의견을 10일 내놨다. 우체국보험적립금 차입은 ‘정부 간 내부거래’에 해당돼 국회 승인이 필요한 추경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입장을 반박한 것이다. 야당은 정부의 국회 승인 없는 우체국보험적립금 차입은 ‘국가재정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정보통신진흥기금 수입 부족에 따른 우체국보험적립금의 차입에 대한 국가재정법 위반 여부에 대한 검토의견’을 제출했다. 정부는 지난해 세수결손으로 정보통신진흥기금이 부족해지자 우체국보험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 적립금에서 2500억원을 연 4.04% 이자로 빌린 바 있다.

예정처는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돈을 빌려 쓴 것은 국가재정법상 국가채무를 늘린 것에 해당하므로 국회의 심의를 거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2023년 정보통신진흥기금이 우체국보험적립금을 차입한 것은 국가재정법 제91조(국가채무의 관리) 제2항 2호에 따른 국가의 회계 또는 기금의 차입금에 해당한다”며 “예산총칙에 정보통신진흥기금의 차입금 한도액을 추가하는 내용의 추경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칠 필요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가재정법은 세수결손이 발생하는 등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회의 의결을 얻은 금액의 범위 내에서 국채 또는 차입금으로써 세입을 충당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차입 한도는 국회가 의결한 ‘예산총칙’으로 정해진다. 다만 정부 내부 간 거래이면 국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다.

정부는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돈을 빌린 것은 국가재정법이 허용하는 ‘정부 내부 간 거래’라 예산총칙의 차입 한도 설정과 관련이 없고 국가채무에도 포함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예정처는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빌린 돈은 ‘예산총칙상 차입한도’로 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즉 정부의 임의적인 우체국보험적립금 차입이 국가재정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본 셈이다.

예정처는 “대출을 시행한 우체국보험적립금이 국가재정의 외부이므로 내부거래에 해당하지 않으며 국가채무로 봐야 한다”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차입금에 대한 이자 상환을 위해 2024년부터 정보통신진흥기금 지출사업으로 ‘민간차입금 이자상환’을 편성했다는 점은 우체국보험적립금과 정보통신진흥기금 간 대출을 국가재정 내부거래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설명했다.

기재부는 부실 해명 논란에도 휩싸였다. 김윤상 기재부 2차관은 지난 8월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진 의원이 ‘과거에도 정보통신기금이 우체국보험적립금에서 차입한 적이 있냐’고 묻자 “2007년부터 2010년도에도 같은 방법으로 자금을 조달한 사례가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예정처는 “역대 예산 집행과정에서 예산총칙에 명시되지 않은 차입을 진행한 선례가 정보통신진흥기금 및 우체국보험적립금에 대해서는 없었음을 확인했다”고 반박했다.

진성준 의원은 “정부가 세수펑크로 인한 결손액을 우체국 고객 몰래 차입하면서 우체국 보험에 대한 신뢰성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며 “국회 승인 없는 정부의 우체국보험적립금 차입은 명백한 국가재정법 위반인 만큼, 기재부의 위법적 행태에 책임을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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