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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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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의 돌발史전]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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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중 '서당'.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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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면 능히 스승이 될 수 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必究其寬裕慈惠, 溫良恭敬, 愼而寡言者, 使爲子師.

(필구기관유자혜, 온량공경, 신이과언자, 사위자사.)

반드시 너그럽고 여유있으며, 인자하고 은혜로우며, 온화하고 어질며, 공손하고 조심하며, 삼가고 말이 적은 자를 구해 자식의 스승을 삼아야 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念頭濃者, 自待厚, 待人亦厚, 處處皆濃; 念頭淡者, 自待薄, 待人亦薄, 事事皆淡. 故君子, 居常嗜好, 不可太濃艶, 亦不可太枯寂.

(염두농자, 자대후, 대인역후, 처처개농; 염두담자, 자대박, 대인역박, 사사개담. 고군자, 거상기호, 불가태농염, 역불가태고적.)

마음이 두터운 사람은 자신에게도 후하고 남에게도 후하여 곳곳을 모두 두텁게 하며, 마음이 담박한 사람은 자신에게도 박하고 남에게도 박하여 일마다 담박하게 한다. 그러므로 군자는 일상의 기호가 지나치게 두텁거나 담박해서는 안되며 지나치게 고적해서도 안된다. –'채근담(菜根譚)’ 수성(修省)

(1)

약 25년 전 신문사 사회부 수습기자를 할 때였습니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 강력반에 들어가 보니 머리를 희한한 색깔로 물들인 십대 소녀 네 명이 웃으면서 앉아있었습니다. 옆에서 무서운 강력반 아저씨들이 아무리 호통을 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그 한쪽에선 한 중년 남성이 아주 통쾌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그 소녀들은 인근에 있는 K중학교를 중퇴한 아이들인데, 수시로 옛날 학교를 찾아가 후배들을 협박하고 금품을 뜯으며 폭행을 했다더군요. ‘1진’ ‘2진’이니 하는 서열을 정하고 ‘X관계’ ‘Y관계’니 하는 이상한 관계를 맺으면서 말이죠. 그 철없이 웃고 떠드는 아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서 있던 그 아저씨는 누구였을까요? 바로 그 중학교의 학생주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아이고, 이 자식들 드디어 잡았구나. 형사님들, 얘들 좀 단단히 혼내 주세요. 다시는 우리 학교에 발붙이지 못하게…” 희희낙락하던 그 선생님은 저와 눈이 마주치자 기자임을 눈치채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님, 이거 뭐 신문에 내시지는 말고… 정 내시려거든 ‘A중학교’라고 좀 써주세요. 사실은 거기 신문사 부장하고 제가 고등학교 동창이고 말이죠…”

그 순간 저를 절망감에 빠뜨린 것은 그 철없는 아이들의 어이없는 만행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 선생님의 태도였습니다. 자기가 가르치던 애들이 경찰서에까지 끌려왔는데, 저 어린 아이들은 곧 형사처벌을 받게 될 것인데, 교육자로서 어떻게 저렇게도 부끄러운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는 걸까? 애들을 감옥에 보낸다는 건 명백한 교육의 실패가 아닌가? 그런데도 저렇게 즐거운 표정이라니! 이것이 우리 교육의 현주소인가?

(2)

그로부터 3년쯤 흘렀습니다. 스승의 날 다음날이었죠. 매우 충격적인 기사가 각 신문의 사회면 톱을 장식했습니다. 광주(光州)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 10여명이 선생님을 짓밟고 주먹질을 했다는 기사였습니다. 천인공노(天人共怒)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듯, 모든 사람들은 일제히 그 학생들의 무도(無道)함을 성토했습니다.

아무리 젊은 선생님이 ‘목과 머리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오던 상황’이었다고 해도 학생들의 이런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할아버지뻘 되는 나이드신 선생님에게 폭언을 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등골에 식은땀이 다 흐르더군요. 우리 세대가 그 나이드신 선생님 나이가 된다면, 이제 손주뻘 되는 애들하고 ‘친구’ 해야 되는 겁니까? 저와 연배가 비슷한 그 선생님의 순간적인 분노도, 이렇게 생각하면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애들에게 폭행을 당했다”라는 폭로(暴露)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신의 수치를 무릅쓰고 자신의 실명(實名)까지 공개하면서 사회에 경종을 울리려 한 그 선생님의 용기는 일단 높이 살 만 합니다.

(3)

그러나…

자꾸만 뭔가 개운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선생님은 5월 15일에 사건을 폭로하며 “스승을 공경하라고, 교권을 보장하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인간으로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교실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할 뿐”이라면서, 폭로의 의미를 애써 축소시켰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날에는 그 의미가 매우 확대됩니다. 그 선생님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당당히’ 교육철학적 사변을 설파합니다. “교권을 경시하는 풍조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이 문제를 공론화해 모두가 함께 깊이 고민해보자는 차원에서 공개결정을 한 것이다. 그동안 쌓여온 교권 경시 현상이 사건으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교육이란 마치 옥(玉)을 다듬어가는 끝없는 과정…” 각 신문과 방송에 크게 실린 뒤 심경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 학생들은 이미 경찰 조사를 받기 시작했고 ‘학칙과 관계없이 형사처벌할 방침’이라는 운명을 따르게 돼 있었습니다. 학생으로서 학칙에 의한 징계를 받는 것이 아니라 ‘범법자’로서 ‘형법’에 의한 처벌을 받게 됐던 것이죠. 상당수의 학생들은 이미 전과기록이라는 젊은 날의 낙인을 피하기 어렵게 돼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미 교육과 계도(啓導)의 테두리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 학교 교장선생님도 직위해제를 면치 못하게 됐고요.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아닌 일반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학생들에게 이런 봉변을 당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사람은 누구를 탓할까요? “학교와 선생님이 애들을 잘못 가르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성토를 하겠죠. 그러면 이런 일을 당한 그 선생님은 과연 누구를 탓해야 할까요? 과연 누구를 향해서 경종을 울려야 할까요?

아무리 학생들이 처음 보는 선생님이었다 할지라도, 목과 머리를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고 교실 밖으로 나오던 일이 교육적 행동의 일부였고, 사태를 유발시킨 원인을 제공했다면, 결국 그 ‘애들을 잘못 가르쳤다’는 성토는 과연 누구에게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증자(曾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에게서 나온 것은 너에게로 돌아간다.(出乎爾者, 反乎爾者也)”(‘맹자’ 양혜왕 상)

영화 ‘친구’에서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라며 학생들을 사정없이 구타하던 한 선생님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유오성이 눈을 치켜뜨며 “건달입니더”라 할 때, 혹시 아주 잠깐, 한 순간만이라도 ‘유오성이 좀 반항을 했으면…’이라 바라지 않으셨던가요? “이런 선생님이 세상에 어디 있담. 영화가 좀 리얼리티가 떨어지는군”이라 생각하신 분은 혹시 계셨던가요? 순간적인 폭력은 아무리 그 이유가 정당하다 해도 학생들의 순간적인 반발을 가져오기 마련입니다.

학생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인륜과 사제지도(師弟之道)를 초개처럼 저버린 그들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폭행(暴行)과 폭로(暴露)로 이어진 ‘폭(暴)’이라는 글자의 연속이 머리를 좀 아프게 했습니다만, 사회를 놀라게 한 그 선생님의 폭로 자체를 탓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미술 선생님이 인터뷰에서도 “예술과 교육은 ‘매번 자기를 부정해가면서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과정’이란 점에서 상통한다”고 밝혔듯, 최소한 “학생들이 패륜을 저지른 원인의 일부라도 됐던 내 행동에 대해 교육자로서 반성한다”라는 자기부정의 말 한 마디만 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만큼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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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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