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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장롱 다이어트로 따뜻한 겨울을 선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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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에 ‘작업복 나눔’ 운동…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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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
반팔·반바지 한두 벌로 혹한 견뎌
‘포크 나눔’에 이어 두 번째 캠페인

나보다 힘든 사람 ‘약자’라고 생각
‘야’ 아닌 진짜 이름도 찾아줘야죠

“장롱 다이어트 하세요.”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장(52·사진)이 이주노동자에게 겨울옷이나 작업복을 기부하는 캠페인을 시작하며 내건 슬로건이다.

‘이주노동자 작업복 나눔 지원 행사’는 문 센터장이 제안하고 전남노사민정협의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지난달 9일부터 시작됐다. 오는 25일까지 개인이나 기업이 안 입는 겨울옷이나 작업복을 지정된 장소에 가져다놓으면 센터가 이를 수거해 11월9일 이주노동자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다.

“한국에 오는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베트남·라오스 같은 동남아 국가 출신들이에요. 더운 나라들이죠. 특히 계절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길어봐야 8개월까지만 한국에 머물 수 있죠. 그래서 반팔 티셔츠나 반바지 한두벌 정도만 가지고 와요.”

‘한국에서 작업복을 사면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작업복이 싼 건 5만원, 보통은 10만원 정도”라면서 “번갈아 세탁하며 갈아입을 여벌도 필요한데 이주노동자들에겐 적은 액수가 아니다”라고 했다.

문제는 작업복 없이 버티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이 감기를 달고 산다”며 “동상에 걸리는 이들도 종종 있다”고 했다. “이들이 주로 일하는 조선소, 건설 현장, 농가 등은 야외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10월만 돼도 벌써 아침이나 밤에는 상당히 쌀쌀합니다. 11월이 되면 바람 때문에 낮에도 상당히 추워요. 특히 농촌은 작업 현장이 대개 허허벌판이라 몸을 녹일 만한 데도 없어요.”

경향신문

지난달 전남 무안군청 사무실 내에 설치된 작업복 수거함. 전남노동권익센터 제공


작업복과 그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가 세간에 알려진 건 2020년 ‘작업복 세탁소’ 설치를 제안하면서부터다. “암 환자가 발생하는 업체의 노동자들을 만나볼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이들은 페인트나 석면 등 유해 물질이 묻은 작업복을 스스로 세탁했는데, 자신의 속옷도 같이 빨았어요. 결국 발암 물질에 전 속옷을 입었던 거죠. 심지어 가족들 옷까지 함께 세탁한 경우도 적지 않았어요.”

일본에서는 석면에 노출된 작업복을 가족들 옷과 함께 빨다가 그들마저 암에 걸려 숨지는 ‘구보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대기업들은 회사에서 작업복을 따로 세탁해줬어요. 그러나 50인 이하 사업장, 농공단지, 일반 농가 이런 데에선 노동자들이 알아서 세탁을 해야 하죠. 누군가 이들의 작업복을 전문적으로 세탁해줘야 한다고 수없이 제안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어요. 지난해가 돼서야 경남 김해에 1호 세탁소가 생겼고, 지금은 15개 정도의 자치단체로 확대됐습니다.”

‘이주노동자’도 그를 관통하는 화두 중 하나다. 앞서 지난 7월부터 지난달까지 그는 이주노동자 포크 나눔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주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제일 필요한 게 뭔지를 설문했어요. 그중 하나가 ‘포크’였습니다. 인도네시아나 스리랑카에선 젓가락을 안 써요. 밥 먹기조차 쉽지 않았던 겁니다.”

‘작업복 나눔’은 이 ‘포크 나눔’의 후속편인 셈이다. ‘3탄’도 준비돼 있다. 이른바 ‘이주노동자 이름 돌려주기’ 캠페인이다. “한 이주노동자에게 자기 이름을 써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야’ ‘개XX야’라고 쓰더군요. 주위에서 다들 그렇게 부르니 그게 자기의 한국 이름인 줄 안 겁니다.”

그는 이주노동자를 끌어들이는 정책들은 많지만 아직도 우리는 그들을 ‘사람’이 아닌 ‘도구’로 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그들을 ‘도구’로 대하면 그들도 우리를 그렇게 대할 겁니다. 한 한국인이 얼마 전 동남아 여행을 갔다가 현지인에게 ‘개XX야’라는 소리를 들었대요.”

그는 어쩌다가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을까? 그는 원래 광주노동건강상담소에서 노동자 건강 관련 시민운동을 하다 1999년 민노총 광주전남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10여년을 일하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진 민노총 금속노조 본부에 있었다. “제 작업복 세탁소 제안은 민노총에서조차 퇴짜를 맞았습니다. 노조도 없는 작은 회사의 노동자, 타국에서 하소연할 데조차 없는 이주노동자들에겐 노조조차 또 다른 ‘기득권’이었어요.”

“저에게 있어 ‘사회적 약자’는 ‘노동자’ ‘농민’ 같은 정형화된 존재가 아닙니다. ‘나, 문길주보다 힘들게 사는 사람’입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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