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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人터뷰] '23년 검사' 변호사로 새 출발…"'내 사건' 주인의식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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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넉달 법무법인 해송 박찬록 변호사
사건 관계자에 높은 권력기관 문턱 실감
'검수완박' 피해 국민 위해 사건 신속처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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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의 검찰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박찬록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해송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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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장우성 기자] 23년 6개월. 박찬록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법무법인 해송)가 대한민국 검사로 기록된 시간이다.

'박찬록 검사'는 탄탄했다. 검사라면 누구나 일하고 싶어하는 법무부·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을 모두 거쳤다. 중앙지검 특수3부 수석검사 시절에는 정권 실세 '왕차관'을 구속시켰다. 뇌물 혐의를 받은 대통령 친형 구속에도 한 몫했다. 아침에 소환한 피의자가 9시 뉴스 첫 보도에 등장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 당시 특수1부 부장검사는 윤석열 대통령이었다고 한다.

법무부 보호법제과장 때는 흉악범죄자가 형기를 마쳐도 시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보호수용법' 제정을 추진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격변기에 아쉽게 무산됐지만 몇 년 뒤 조두순이 출소하자 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쳤다. 대검에서는 '검찰총장의 눈과 귀'라는 범죄정보기획관실에서 근무했다.

수사 일선은 물론 법정도 그의 무대였다. 서울중앙지검 공판1과장, 서울고검 공판부장을 거치면서 다양한 공소유지를 맡았다. 작은 사건도 밤을 잊고 준비하는 남다른 열정에 감탄한 판사에게서 "존경스럽다"는 편지를 받기도 했다.

민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귀족검사'의 길만 걷지는 않았다. 검사의 본령인 형사부에서도 잔뼈가 굵었다. 지방 작은 지청에 근무할 때였다. 전임 검사들이 연달아 무혐의 처분한 아동 교통사고를 재수사해 진실을 은폐했던 피의자를 구속기소했다. '어린 아들의 한을 풀어달라'는 부모의 진정서 한 구절에 불붙은 수사 의지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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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근무 당시 박찬록 변호사./박찬록 제공


하지만 이제 그는 개업 넉달 된 새내기 변호사다. 검사가 어깨 너머로 보던 변호사 세계와는 딴판이었다.

"검사는 선후배, 직원들과 서로 도우며 일을 하죠. 하지만 변호사는 A부터 Z까지 혼자 힘으로 해야 합니다. 도와주는 변호사가 있지만 사건 수임도, 중요한 결정도 홀로 해야죠. 한마디로 홀로서기의 과정 같아요."

사람들은 '전관'의 힘이 무시무시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대형로펌의 독점 강화 속에 갈수록 치열해지는 약육강식 전쟁터에서 분투하는 한명의 법률가일 뿐이다.

공격하는 검사에서 수비하는 변호사로 위치 이동하다보니 안 보이던 모습도 보인다. 사건 관계자들에게 검찰·경찰·법원이라는 권력기관의 문턱은 너무 높다. 왜 먼저 개업한 선배 검사들이 '경청'을 당부했는지 피부에 와닿는 요즘이다.

떠난 지 석달 밖에 안됐는데도 그리운 검찰청의 옛 동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신속한 사건 처리'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눈·코·입, 팔·다리가 다 있습니다. 사건 하나 하나 공정하고 법적 절차에 맞게 가급적 신속하게 처리해주시길 바랍니다.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겸손하고 진솔하게 사건 관계인을 대해 준다면 누구든 뜻하는 바대로 되지 않더라도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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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의 검찰 생활을 마치고 퇴직한 박찬록 변호사가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해송 사무실에서 더팩트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임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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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로 첫발을 떼면서 책도 한 권 펴냈다. '검사의 추억, 그리고 검수완박'(바른북스)이라는 이름이다. 고시생 때 이미 '행정법' 수험서 저자가 됐지만 본격적인 의미의 저서는 처음이다. 오래 전부터 쓰고 싶었지만 미뤄온 일이다. 요즘 검사 중 흔치않은 국문학도 출신이기도 하다.

박 변호사는 '검수완박'의 피해자는 국민이라고 지적한다. 개인 입장에서는 평생 형사 사건이 하나 생길까 말까하지만 막상 닥치면 암담하기 짝이 없다. 사건 처리라도 빨리 끝나면 다행인데 '검수완박' 이후에는 하세월이다.

무엇보다 검사든 경찰이든 '내 사건'이라는 주인 의식이 사라져 안타깝다. 불송치, 이의신청, 보완수사 등에 걸치는 검경의 핑퐁게임 속에 사건 관계자는 애간장만 녹는다. 밤을 세워서라도 범죄자를 잡고 진실을 가리겠다는 수사기관의 열정은 식어 간다. 시행령 개정 이후 사정이 조금은 나아졌지만 불과 몇년 사이 검찰과 경찰에도 '주인의식 부재'는 빠르게 스며들었다.

검수완박에서 더 나아가 최근 야당에서는 검찰청을 기소청으로 바꾸는 법안을 추진한다. 박 변호사는 "그런 법안이 과연 국민에게 이로운지 얼마나 연구가 됐는지 의문"이라며 "검찰을 형해화해 70년 이상 유지해온 형사사법체계의 법적 안정성을 흔드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급진적 기류의 배경에는 검찰의 공정성이 신뢰받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 변호사는 그 해법도 투명하고 신속한 사건 처리라고 강조한다. 지연된 수사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그는 "고소고발 즉시 수사해 죄가 되면 기소하고 안되면 과감히 불기소하는 등 원칙대로 신속히 수사해야 국민적 오해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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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록 변호사의 '검사의 추억, 그리고 검수완박'/바른북스


박 변호사의 책에는 검수완박 같은 사회적 현안 뿐 아니라 그의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담겼다. 특히 부모와 고향은 그의 삶의 팔할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홋카이도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던 아버지, 정신대나 위안부로 끌려갈 뻔하다 구사일생한 어머니. 우리 현대사의 산 증인과 다름없는 두 사람과 자신의 삶을 염상섭의 '삼대'처럼 소설로 풀어내고 싶은 욕심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동네 산비탈에서 밭농사를 짓던 박 변호사의 집은 해마다 5월5일이면 어김없이 땅콩 파종을 했다. 그래서 그에게 어린이날은 '우리들 세상'이 아니라 가장 괴로운 날이었다. 어른이 되면 절대 농사일을 하며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 만큼 고된 기억의 고향이지만 뒤돌아보니 그 시절이 달리 보인다.

"할 일 없으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지으라고 하죠. 모르고 하는 소리에요. 자연의 섭리를 깨닫지 않고는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씨앗을 뿌려 싹이 트면 밭을 매고 수확하기까지 되풀이되는 과정에서 인내와 겸손을 배우죠. 제 삶에 큰 힘이 됐습니다."

소 키우는 산골 소년이던 박 변호사는 자신을 '개천에서 난 용'이라고 여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 선택한 검사의 길. 그 꿈을 변호사로서 마무리하기 위해 오늘도 수북하게 쌓인 기록과 밤을 보낸다.

leslie@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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