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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고 넘치는 OTT 콘텐츠 무엇을 봐야 할까요. 무얼 볼까 고르다가 시간만 허비한다는 '넷플릭스 증후군'이라는 말까지 생긴 시대입니다. 라제기 한국일보 영화전문기자가 당신이 주말에 함께 보낼 수 있는 OTT 콘텐츠를 2편씩 매주 토요일 오전 소개합니다.천영은 어미가 노비라는 이유로 갑자기 평민에서 몸종으로 전락한다. 그는 왜란 중 빼어난 무술 실력을 발휘하며 백성들의 환호를 얻는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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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전, 란’은 정여립(1546~1589)의 사연으로 시작한다. 정여립은 대동계를 결성했다가 역모죄에 몰려 자결한다. 선조(1552~1608·차승원)는 진노한다. 감히 조선의 신분제를 뒤흔들고, 자신의 안위를 위협했다는 이유에서다. ‘전, 란’은 정여립을 통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전 밑동부터 흔들리고 있던 조선사회를 그린다. ‘전(戰)’이 ‘란(亂)’으로 비화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셈이다.
①무인 명문가 소년과 천성적 무골인 몸종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종려는 어려움 없이 살아가나 왜란을 거치면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고 복수에 대한 생각에만 몰두한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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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두 남자 종려(박정민)와 천영(강동원)을 이야기 축으로 세운다. 종려는 무인 명문가 장손이다. 천영은 어미가 노비라는 이유로 평민에서 종려의 몸종으로 전락한 인물이다. 종려는 ‘가업’을 잇기 위해 어려서부터 검술 실력을 쌓으나 재능은 빼어나지 않다. 천영은 노비라는 굴레에 갇힌 타고난 무골이다.
종려와 천영은 조선사회 신분제의 모순을 상징한다. 두 사람은 비밀을 두 가지 지니고 있다. 둘은 당시 금기와 달리 신분을 넘어 우정을 나누는 사이다. 세상에 밝혀지면 깜짝 놀랄 사연이 있기도 하다. 왜란이 일어나며 두 사람은 두 가지 비밀 때문에 서로 등지게 된다.
②각 신분의 눈으로 바라본 왜란
빼어난 무술 실력에도 무인이 될 수 없는 천영은 조선사회 신분제의 모순을 상징한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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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이 침범하자 여러 신분들끼리 충돌이 벌어진다. 양반들은 노비에게 쫓기고, 피란길에 나선 선조는 백성들과 부딪힌다. 신분제로 들끓던 사회적 갈등이 전쟁으로 폭발하게 된다.
전란의 와중에 종려와 천영은 각기 다른 길을 간다. 종려는 무인 집안 신분에 맞는 진로에 접어들고, 천영은 의병 활동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한다. 둘의 충돌은 예고돼 있는데, 둘 사이에 왜장 겐신(정성일)이 끼어들며 이야기는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한다.
왜란이라는 역사를 배경으로 신분제라는 조선의 고질을 파고드는 게 매력적이다. 종려와 천영뿐 아니라 의병장 김자령(진선규), 평민 출신 의병 범동(김신록) 등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시대를 스펙트럼처럼 다채롭게 들여다보는 형식이 흥미롭기도 하다.
③흥미로운 인물들, 흩어지는 시점
피란 와중에도 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선조는 조선사회 신분제의 완고함을 대변한다. 넷플릭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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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활용한 다양한 액션이 눈요기다. 종려와 천영 등 세 명이 안개 속에서 뒤엉켜 펼치는 칼 싸움은 이 영화의 시각적 절정이다.
역사와 액션을 결합해 시각적 재미와 메시지를 주는 점도 매력이다. 백성들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경복궁, 노비들에 의해 불타버린 종려의 집은 기성 질서의 붕괴를 상징한다. 전란 후 도탄에 빠진 백성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왕실 권위를 위해 경복궁 재건에 몰두하는 선조의 집착을 통해 역사의 어두운 이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가 흔들거린다. 126분 동안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과 여러 갈등을 보여 주려다 중심을 잃는다. 개성 강한 인물들의 화면 공간이 넓어지니 종려와 천영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둘의 대결이 빚어낼 긴장감이 줄어든다.
뷰+포인트
지난 11일 막을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로서는 최초다. 박찬욱 감독이 제작하고 각본까지 썼다. ‘심야의 FM’(2010)과 ‘더 테너 리리코 핀토’(2014) 등의 김상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 감독의 단짝인 조영욱 음악감독이 영화음악을 책임졌다. 큰 화면에서 볼수록 매력을 실감할 수 있는 영화이나 넷플릭스에서만 만날 수 있다. 한국 영화의 세공술을 보여주는 작품이나 제대로 즐기기 어려운 셈이다. 극장 시장 쇠락과 넷플릭스의 강세라는, 한국 영화계의 현실을 의도치 않게 보여준다. ***한국일보 권장 지수: ★★★☆(★ 5개 만점, ☆ 반 개)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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