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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R&D 예타 폐지 입법예고, 옥석 가리는 절차는 필요하다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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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이하 예타)를 폐지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정부가 지난 8일 입법예고했다. 지금까지 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고 국가재정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은 예타를 거쳐야 했는데, 앞으로는 그럴 필요가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혁신적인 R&D 사업이 예타를 거치느라 추진이 지연되는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R&D 예타는 평균 소요기간이 2019년 6개월에서 2022년 8.3개월로 늘어났다. 예타를 7개월 내에 끝내도록 한 '국가 R&D 사업 예타 운용지침' 위반이 일상화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학자들은 예타가 필요가 없는 소규모 R&D에 치중하고 있다. 예타 신청 건수가 2019년 83건에서 2023년 51건으로 줄었다는 게 그 증거다. 예타를 통과한 사업 역시 2019년 18건에서 2023년 3건으로 급감했다. 예타가 대규모 R&D의 발목을 잡은 꼴이다.

그럼에도 수백억 원의 국고가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그 타당성을 검증하는 절차는 필수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R&D 예타를 통해 부적정 사업을 걸러내고 사업비를 절감하면서 2018년 이후 25조8000억원의 예산 절약 효과를 봤다. 예타의 이런 긍정적 효과를 유지하기 위한 절차는 여전히 필요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사업비가 1000억원이 넘는 연구형 R&D(기초·원천연구와 국제공동연구)는 예타의 대안으로 '전문 사전 검토제'를 도입하겠다고 했다. 민간 전문가들이 사전에 사업을 검토해 기획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락 결정은 가급적 하지 않겠다고 하니 부적정 사업을 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 검토제의 효과가 의문시된다고 했다. 자칫 정부와 민간 전문가 집단 내 인맥이 탄탄한 연구자의 사업이 우선 선정되는 '짬짜미'가 생겨나지 않을까 걱정이다.

내년도 국가 R&D 예산이 29조7000억원이다. 혁신적인 R&D 사업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하면서도 부실 사업은 가려낼 수 있도록 관련 시스템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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