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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콧대 높던 샤넬이 홀딱 반했다…디지털 아트에 생명력 불어넣는 이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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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김 비자인 대표 인터뷰


매일경제

제이슨 김 디지털 아트 디렉터.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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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위치한 메타버스 전시 공간 ‘아트버스(ArtVerse)’에선 하이엔드 명품 브랜드와 아티스트 간 협업 이벤트가 열렸다. 보수적인 샤넬이 디지털 아티스트와 최초로 콜로키움을 연 것으로 패션업계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다. 콜로키움이란 샤넬이 주요 임원진들을 모아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일종의 사내 교육 겸 전시 행사로, 브랜드에 영감을 주는 걸 목표로 한다. 단독 협력 아티스트로 참여한 제이슨 김 비자인 대표(사진)는 샤넬의 대표 디자인인 ‘트위드’ 그리고 ‘자유’라는 키워드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김 대표는 “디지털 아트는 매체의 경계, 연령, 언어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확장성이 뛰어나다”며 “그만큼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쉬운 형태이다보니 최근 더욱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발전과도 연결돼 있다. 튜브형 물감이 등장하면서 예술가들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 인상주의 사조가 가능해졌던 것처럼 첨단 기술의 발달은 디지털 아트의 시공간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은 예술 작품의 희소성을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김 대표는 “샤넬이 콜로키움 장소로 아트버스를 선택한 것도 기술과 맞닿아 있다”며 “메타버스를 가장 잘 구현한 장소로 평가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트버스에선 국내 1세대 디지털·크립토 아트 큐레이터 그리다 샌드박스 디렉터가 다수의 전시를 큐레이션 하기도 했다.

아티스트로서 김 대표의 궤적은 독특하고 화려하다. 학부 재학생 시절부터 LG그룹과 협업했고 석사 과정 중 데미안 허스트, 쿠사마 야요이, 이우환, 뱅크시 등 대가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얼핏 인맥이 뛰어난 네트워킹 덕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 중 김 대표의 개인적 인연으로만 성사된 협업은 하나도 없다. 김 대표는 거장들이 원하는 것을 미리 알아채고 이를 설득하는 데 긴긴 시간을 투자했다.

예컨대 쿠사마 야요이 재단에는 작가가 지니고 있는 아티스트로서의 열망을 짚어내며 설득했다. 그는 “예술가는 누구나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지만 캔버스나 조형물같은 전통적인 매체가 지금은 디지털로 바뀌었다”며 “‘더 많은 대중들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자’고 설득해 쿠사마 작가와 협업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LG와 협업하게 된 계기도 극적이다. 학부생 시절 김 대표는 교수들에게 ‘마지막 수업을 하게 되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라는 공통 질문을 보낸 뒤 얻은 답변을 엮어 책으로 낸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를 눈여겨 본 LG그룹 임원이 그에게 한번 보자는 연락을 했다. 대화 중 김 대표는 LG가 개발 중인 OLED 디스플레이를 생산단가에 맞게 고급 브랜드로 인식될 수 있는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선명한 화질’ 같은 기능을 강조했을 땐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TV가 아닌 ‘블랙 캔버스’ 개념을 제안한 것이다.

김 대표는 “고가 예술품을 담는 캔버스로 발상을 전환하면 디스플레이를 고가에 팔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는 LG그룹과의 협동 전시회로 이어졌고, 이 인연은 훗날 김 대표가 사치 갤러리, 프리즈 등 내로라하는 기관들과 협력하는 데도 기반이 됐다.

디지털 아티스트가 된 계기도 우연에 가까웠다. 영국 왕립예술대학(RCA)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그는 ‘터치 디자이너’ 같은 프로그램을 배우는 교양 수업에서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이를 예술과 연결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는 꾸준히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예컨대 액션 페인팅의 대가 잭슨 폴록의 작품을 디지털 아트로 재탄생시킨 사례를 보면, 폴록은 항상 재즈 음악을 틀어놓고 작품 활동을 했다. 재즈 음악과 폴록의 작품에 쓰인 색상을 합치면 음악에 맞춰 그가 사용한 색상들이 타닥타닥 터지는 영상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런 활동을 기반으로 프리즈 아트 페어에서 디지털 아트 부문 최초 디렉팅을 총괄하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도 작품이 필요로 하는 모든 프로그래밍 작업을 직접 하고 있다. 보안 문제도 있지만 작품의 모든 과정을 그가 총괄하고 싶기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맡기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아직 디지털 아트는 본격적으로 태동한지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분야랴 전문가가 없다는 게 장점”이라고 웃었다.

기술과 미술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디지털 아트는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디지털 아트 시장이 커지기 위해 ‘예술 이면의 메시지에 주목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 작품이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문화 현상을 사회에서 읽어내는 시간을 줘야 한다”며 “디지털 기술이 아닌 그 이면의 메시지를 보려고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디지털 아트의) 가치가 커지고 시장도 깊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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