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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민주당 ‘집토끼’ 흑인·히스패닉은 왜 트럼프를 지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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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히스패닉 사이 트럼프 지지율 높아지는 이유

경향신문

지난 7월9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설하는 동안 한 지지자가 팻말을 들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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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을 20여 일 앞두고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던 흑인·히스패닉계 표심이 갈수록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민주당 대선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승리를 위해 절실한 이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시에나대학과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6일까지 흑인 유권자 589명 및 히스패닉계 유권자 9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유권자 중 흑인 비율은 78%, 히스패닉 비율은 56%였다.

지난 2020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흑인 유권자 90%, 히스패닉 유권자 63%의 지지를 받은 점과 비교하면 크게 줄어든 수치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흑인 유권자는 15%, 히스패닉 유권자는 37%로 과거보다 지지율이 늘어났다.

NYT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랫동안 민주당이 우위를 점하고 있던 부분을 광범위하게 갉아먹고 있는 듯하다”며 “(해리스 부통령에 대한 흑인·히스패닉 유권자의) 지지율 하락이 이어진다면 해리스 부통령이 주요 경합주에서 승리할 가능성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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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선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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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반이민 발언? 나랑 상관없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과정에서 강조하고 있는 반이민 및 미국 우선주의 메시지가 흑인·히스패닉 유권자에게 상당히 공감을 얻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지난 10월 대선 후보 토론에서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에 사는 아이티 이민자들이 이웃의 반려동물을 잡아먹는다’고 말하는 등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실과 어긋나는 주장을 펼치는 데 대해 이들이 별로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 결과를 보면 히스패닉 유권자 40%, 흑인 유권자 20%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불쾌함을 느끼는 이들은 그의 발언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히스패닉 유권자 중 67%는 이민에 관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자신에 관한 이야기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미국 밖에서 태어난 히스패닉 유권자 중 51%도 마찬가지로 답했다.

히스패닉 유권자 중 3분의 1 이상은 멕시코와 남부 국경 사이 장벽을 세우는 것과 불법 이민자를 추방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NYT는 “전반적인 조사 내용을 합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들 사이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인기가 없는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② 문제는 경제야

이번 조사에서 히스패닉 유권자 20%와 흑인 유권자 26%만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이 좋거나 우수하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집단의 절반 이상은 고물가로 지난 1년 동안 식료품 구매량을 자주 줄였다고 답했다. NYT는 “많은 사람은 민주당이 ‘인종 평등’을 증진하려는 노력으로 유권자를 확보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경제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를 얻기 시작한 건 흑인 민권 운동이 시작된 1960년대가 아니라 1930년대이며,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 민주당을 ‘노동자 계급의 정당’으로 재정의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NYT는 이번 여론 조사가 ‘노동자 계급의 정당’이라는 민주당 핵심 가치의 이점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게다가 ‘억만장자 사업가’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특성과 트럼프 1기가 ‘번영의 시대’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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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열린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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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민주당, 믿을 만한지….

민주당에 투표해도 경제 상황 등이 별로 나아질 게 없을 것이란 인식도 해리스 부통령에게 불리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공화당보다 ‘공약을 더 잘 지킨다’고 답한 이들은 흑인 유권자 중 63%, 히스패닉 유권자 중 46%에 그쳤다. NYT는 “흑인과 히스패닉 유권자는 민주당의 의도를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에 실망하고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자신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낮아진 배경에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 더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임기 때 많은 이들이 기대했던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NYT는 덧붙였다. 그동안 흑인·히스패닉 유권자들이 민주당에 기대를 건 세월이 꽤 되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이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다.

④ ‘뉴노멀’ 트럼프?

이번 NYT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흑인·히스패닉 유권자 중 특히 ‘젊은 남성’ 사이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었다. 45세 이하 히스패닉 남성 유권자의 55%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해 해리스 부통령의 지지율(38%)을 앞섰다. 민주당 지지세가 더 강한 흑인 유권자의 경우 45세 이하 남성 27%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이들 젊은 남성은 흑인 민권 운동 이후에 성인이 된 집단이며, 이들에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종종 기존 규범을 무시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이들에겐 이런 묘사가 그다지 심각한 문제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시대를 겪으며 성인이 된 이들은 오히려 주택가격과 고물가 같은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길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젊은 라틴계 유권자 역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책이 더 도움이 된다고 답할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았다고 NYT는 전했다. 캘리포니아주 스톡턴의 경비원인 리카르도 산체스(20)는 NYT에 “인터넷에선 트럼프를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붙였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의도된 메시지는) 미국인을 돌보고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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