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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서산 갯벌 온통 썩은 바지락 … 고온에 수산물 물가도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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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플레이션 ◆

매일경제

충청남도 관계자들이 서산시 가로림만 갯벌에서 폐사한 바지락들을 살펴보고 있다. 충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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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충남 서산시 팔봉면 가로림만 갯벌. 수만 개의 바지락이 껍데기가 벌어진 채 뒤집혀 있었다. 71일간 지속되던 고수온 경보가 지난 2일 해제되면서 마음을 놓고 있던 어민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한 어민은 "수확기가 눈앞인데 바지락이 모두 썩어버렸다"며 "내 속도 썩어 문드러졌다"고 한탄했다. 충청남도는 즉각 피해 상황 파악에 나섰다. 충남도에 따르면 서산시 가로림만 어촌계 17곳 중 13곳에서 바지락 집단 폐사가 발생했다. 피해 면적으로는 축구장 900개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전체 바지락 양식장의 78%에 해당한다.

국내 최대 꼬막 산지인 전남 여수시 여자만에서는 새꼬막 80%가 폐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꼬막 양식업 어업회사법인인 주식회사 여수새고막의 조사에 따르면 보통 10㏊당 30t 정도의 종패를 갯벌에 뿌리는데 올해는 고수온 영향으로 이 중 80%가 폐사했다고 피해 상황을 당국에 보고했다.

경남 통영시의 굴 양식장에서는 곳곳에서 썩은 굴들이 발견되고 있다. 지난 10일까지 경남도에는 717건의 굴 집단 폐사 피해가 신고됐다. 피해 면적은 1130㏊로 전체 굴 양식 면적의 35%에 이른다.

서해안과 남해안에서만 고수온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동해안도 예외가 아니다. '기장 미역'으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 앞바다에서는 자연산 미역이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10월의 바다 온도가 22도 아래로 떨어져야 미역이 자라고 수확할 수 있는데 바다 온도가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다. 수확기 수온이 높으면 미역 엽체에 지름 0.5~1.5㎜ 정도의 작은 구멍이 생기는 '바늘구멍병'도 나타나 상품성이 떨어지게 된다.

올해 여름과 가을 폭염으로 농작물 피해가 커서 사과와 배추 가격이 치솟는 등 땅으로부터의 '기후플레이션'이 서민경제를 위축시켰다면 올겨울에는 바다로부터의 '기후플레이션'인 '피시플레이션(fishflation·수산물 가격 급등)'이 우리 식탁을 엄습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 육상에서 폭염 경보가 역대 최장기간 이어진 것처럼 바다에서는 고수온 특보(수온이 28도 이상인 경우)가 지난 7월 24일부터 이달 2일까지 71일 동안 이어져 관련 발령제가 실시된 이후 최장기간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양식장의 폐사한 어패류 숫자가 5000만마리에 이르는 등 역대 최악의 피해를 입었다.

이와 같은 어패류 집단 폐사는 수산물 가격 급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8~9월 제주도 광어 양식장에서 광어 수만 마리가 집단 폐사하면서 국민 횟감인 광어가 한때 ㎏당 3만5000원까지 치솟았다. 최근 서해안 천수만에서는 우럭(조피볼락)이 600만마리 집단 폐사해 우럭 소매가격이 치솟고 있다.

문제는 고수온으로 인한 피시플레이션이 아직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보통 굴·꼬막·김 등 대표적인 양식 수산물은 8~10월 채묘된 뒤 11월부터 본격 출하되기 때문에 바다로부터의 기후플레이션은 11월 이후 체감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채묘 단계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고수온으로 인해서 채묘 시기를 놓친 양식장이 많아 수확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 대책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 우선 직접 피해를 당한 어민들에게는 직접적인 보상이 이뤄지고 또 공급 감소로 가격이 뛸 수 있는 수산물에 대해서는 수입 대체 등을 통한 가격 안정화 대책을 내놓는다.

해양수산부는 고수온으로 가격이 급등한 해산물은 유통 과정에 조치를 취해 가격을 안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 고수온과 수출 증가 여파로 마른김 가격이 급등하자 5개월여간 마른김과 조미김에 붙는 관세를 인하했고 가공업체,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 김 양식면허지 확대, 마른김 가격 할인, 수매자금 지원, 수입 김 관세 인하 등의 조치를 내놨다.

지난 추석 연휴 기간에는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각종 해산물에 대해 비축 물량을 방출하고 할인해 판매하기도 했다. 해수부 관계자는 "올겨울 피시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며 "오는 11월 고수온 관련 종합 대책을 추가로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도형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멍게 양식은 통영에서 집중적으로 폐사율이 높았는데 환경 분석을 추진하고 있다"며 "고수온이 원인일 수도 있고 물렁증 같은 병이 있을 수도 있어 전반적으로 환경과 고수온 상황을 병행 분석해 수산 분야 기후변화 대응 태스크포스(TF)에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기철 선임기자 / 강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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