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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보수’는 ‘한탕’을 노리지 않는다 [권태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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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동남아 3개국 순방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해 공군 1호기에서 내리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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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 논설위원실장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절반(임기 반환점 11월10일)이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지율, 공직사회 기강, 정권 내부 폭로, 여론 등을 보면 이미 정권 말 분위기다. 앞으로 남은 임기 2년 반도 이렇게 지낼 참인가.



14일 아침 방송에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자택 셀 수 없이 방문”, “(2021년 경선 때) 6개월간 윤 후보 부부와 매일 아침, ‘두 분이 같이 들어야 하기 때문에’ 스피커폰으로 대화”, “대통령과 여사가 ‘인수위원회 인사 면접 봐달라’고 요청” 등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두번 봤고, 문자나 통화는 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한다”는 윤 대통령과 명씨,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대통령실의 ‘김건희 여사 라인’ 정리를 또렷하게 요구했다. 총선 전 ‘명품 백 수수’를 놓고 “국민 눈높이에서 생각할 문제”라고 흐릿하게 말했다가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받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 아무도 ‘윤 대통령’을 겁내지 않는다.



이전 윤 대통령은 남들이 뭐라 하든 막무가내식 잡아떼기 등의 뻔뻔한 전략을 자주 구사했다. ‘바이든-날리면 사태’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말을 아끼고 웅크리고 있다. 조직은 리더가 난폭할 때보다 약한 모습을 보일 때 더 흔들린다. ‘대통령은 이 위기를 극복할 복안이 있기는 한가’, 대통령실 직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이다. 1)시간이 흐르면 ‘김건희 사태’도 절로 잦아들까 2)검찰을 동원해보면 어떨까 3)11월에 이재명 유죄 판결 나오면 여론이 좀 돌아설까 4)외부(북한) 위기로 내부 위기를 돌파할 순 없을까. 정상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게 안 된다’고 답할 것이다.



좀 더 난감한 질문이 더 있다. 윤 대통령은 임기 절반을 넘어서기 전에 24번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1)남은 임기 절반, 또 24번의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 2)국민의힘은 임기 말까지 온몸으로 그 부담을 다 떠안아줄 것인가 3)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버릴 수 있을 것인가. 종종 여권 관계자들을 만나는데, 3번 질문에 ‘그럴 것’이라고 답한 사람을 한명도 본 적이 없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5월 “홀로 하이에나 떼에 맞서 부인을 지키려는 윤 대통령이야말로 상남자”라고 말했는데, 국민들도 그리 생각할까. 부인을 지키려고 대통령이 된 것인가.



이 와중에 13일 ‘평양 무인기 전단 살포’와 관련해 ‘한국군이 무인기를 보냈다’며 북한이 맹비난을 했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그런 적 없다”고 답했다가, 긴급회의에 참석한 뒤 1시간 만에 ”사실 여부를 확인해줄 수 없다”로 말을 바꿨다. ‘전략적 모호성’이라 한다. 스스로를 리스크화하는 게 무슨 ‘전략’인가.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 사실관계를 빠르게 정리해 대응해야 할 것을 오히려 북한 주장에 힘을 실어 위기를 극대화하고 있다. 한국군이 무인기를 평양에 보냈다면 곧바로 정전협정 위반인데, 이를 ‘모호한 사실’로 두는 것이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이 내부 통제를 (위해) 다시 긴장을 고조시킨 것”이라고 말했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가 하고 있는 일 아닌가.



보수란, 성향상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경향을 지닌다. 신중한 자세로 다가오는 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보수다. 따라서 보수는 ‘한탕’을 노리지 않는다. 보수를 ‘안정희구 세력’이라 한 건 그 때문이다. 보수적인 가부장은 큰돈을 벌려고 집안 식구들을 담보 잡고 도박판에 나서지 않는다. 그건 ‘노름꾼’이다. 모험을 하기보단 성실하게 식구 한 사람 한 사람 건사하는 데 주력한다. 그래서 보수란 때론 답답하고 시대에 뒤처질 때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리스크를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세력은 반대로 늘 ‘한탕’을 노린다.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경험이 한국 보수세력의 바탕이 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젠 ‘대선판’에도 ‘한판 승부’를 위해 ‘용병’을 들이는 것까지 불사했다. 그런데 ‘한탕’을 노리는 데는 또 윤 대통령만한 사람이 없다. ‘부산 엑스포’, ‘대왕고래 프로젝트’, ‘의대 2000명 증원’에 이어 이젠 ‘북한 무인기’인가.



‘용산 스캔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사이 △의료대란 △연금개혁 △경기침체와 고물가 등 하나하나가 엄중한 국정 상황이 모두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통령이라면 국민 앞에 죄송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 무인기 사태’로 안보를 스스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지금 윤 대통령이 처한 상황은 ‘한탕’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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