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7 (목)

한강 첫 해외 소개 번역가 “하루 만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2013년 7월 한국문학번역원의 해외 원어민 번역가 초청연수 프로그램 하나로 7명의 원어민 번역가가 작가 한강(가운데 정면)과 문학기행했을 때의 모습. 번역가들은 ‘가장 만나고 싶은 작가’ 중 한 명으로 한강을 꼽아, 광주의 5·18 국립묘지, 담양 등을 방문했다. 한국문학번역원 누리집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강의 문학이 위로가 된다면 그건 서구에서보다 유사한 역사적 고통을 겪은 제3세계, 그중에서도 이웃한 아시아에서 더하지 않을까. 한강 작품에 여러 상을 준 서구가 아니라, 제3세계의 말을 들어본다.



한강의 작품이 최초로 국외 소개된 곳이 베트남이다. 2010년이다. 당시 번역가 황하이번(46)과 지난 14~16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황하이번은 10일 밤 출장 중 남편의 휴대폰 문자로 노벨 문학상 발표 소식을 접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노벨 문학상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누구보다 알기 때문에 너무 기분 좋고 감동 받고,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아시아 최초 여성 수상자라는 점이 더욱더 감탄스럽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경의 마음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978년 하노이 출생의 황하이번은 2000년 하노이국립대(한국어과)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현대문학 석사과정(2002~2005)을 마치며 번역가의 길을 걸었다. 대학에 입학했던 1996년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에 최초 방송됐다. “너무 재밌었고 한국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는 고백만큼의 한류 세례를 받고, 급기야 한국어문이 전공과 직업이 된 지구촌 1세대가 황하이번이다. “수준 높은 문학책을 읽는 게 쉽지만은 않던” 때, 소설 한 권이 유독 달랐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다. “잡은 지 하루 만에 처음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후다닥 다 읽을 수 있었다.” 마침 한국문학번역원 주최의 번역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석 달 서울에 머물던 차, 한강 작가와 한국문학기행도 가게 됐다. 2009년이었다.



한겨레

베트남 하노이에 거주하고 있는 번역가 황하이번(46). 그는 2009년 소설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다. 같은 해 한국에서 열린 번역가 대상 문학기행을 통해 한강 작가도 만났다. 본인 제공


―소설 첫 독후감이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어떤 소설이냐, 주제가 뭐냐 쉽게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그때도 어려웠어요. 환상소설 같은 느낌에 엄청 관능적이고 속이 울렁거릴 만큼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의미, 인물의 행동 하나하나를 확실히 설명 못 해도 작품을 다 읽고 난 뒤 독자로 하여금 계속 집착하게 하고, 벗어날 수 없게 합니다.”



황하이번의 답변에는 ‘감각’에 복무하는 형용사, 부사구가 많다. 작중 육식을 마다하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내밀성과 사회성에 대한 탐미주의적 고발이 일깨우는 ‘감각’인 듯 말이다. “개인의 자유, 전쟁 후유증, 가정폭력, 사랑 없는 결혼, 정신질환, 성적 욕망, 예술에 대한 열정과 절대적인 자유에 대한 욕망 등등 한강이 이야기꾼으로서 환기하는 주제에 대해 독자들은 자신들의 사회적 조건 안에서 각기 견해를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다”는 번역가 자신의 말대로다.



―베트남어로 전달이 쉽지 않은 문화적, 언어적 차이가 있었을까요.



“번역은 쉬우면서도 어려웠어요. 다중적 의미어나 추상적인 형용사들을 많이 안 쓰고, 문장이 상당히 짧고 일관성이 있어서 이해하기 쉬웠어요. 또 한국인만 알 만한 역사 이야기나 사투리 또는 고유한 토착 문화적 요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사전을 찾아봐야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문장 전체 의미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본론은 다음부터다.



“하지만 이해가 된다고 해서 바로 번역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캐릭터의 말 뒤에 숨은 의미, 그리고 주어진 상황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때로는 차분하고 느린, 때로는 차갑고 태연스러워서 당황스러운, 때로는 불타는 욕망처럼 열렬하고, 때로는 소름 끼치도록 괴기한 분위기와 이야기의 리듬을 베트남 독자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 눈을 감고 몇 번이고 곱씹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판 ‘채식주의자’는 2016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당시는 맨부커상)을 수상하기 전까지 5년여간 “관심을 끌지 못했다.” 현지엔 이제 장편 ‘소년이 온다’(2019), ‘흰’(2021)이 출간되어 있다. 부커상 이후 ‘채식주의자’의 현지 인기가 미친 영향이고, 이번 노벨상 수상으로 베트남 전역에서 한강의 모든 책이 동났다. 출판사는 ‘소년이 온다’와 ‘흰’ 경우 2주 뒤에나 증쇄본이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채식주의자’는 “증쇄 준비 중”이 마지막 소식이다.



―한강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뭡니까.



“‘채식주의자’는 독자로 하여금 ‘좋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위대한 작품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는 부커상 수상 뒤인 2016년 5월 기자간담회에서 “문학작품을 대답이나 제안으로 받아 들이”는 대신, “질문으로 받아들이면 이 세상에 어렵거나 지루한 문학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독자들이) 그렇게 조금만 마음을 열어주시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바야흐로 베트남에서 황하이번이 알려 오길 “독자들이 책을 사고 싶다고 난리가 났다.”



―베트남 작가들도 직접, 그리고 미국, 캐나다 기반으로도 한국에 소개되고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우선 대단히 훌륭한 작품들 덕분입니다. 그러나 꼼꼼히 보면 국가에서 20년 전부터 전략적으로 한국 문화와 문학을 세계로 퍼질 수 있도록 투자한 결과이기도 하죠. 번역가들도 어느 정도 역할 하지 않았을까요. 베트남뿐만 아니라 모든 아시아 국가가 배워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베트남 문인협회 응우옌 꽝 티에우 회장은 “이번 사건은 세계에 많이 알려지지 못한 베트남이나 작은 나라들에 희망과 기대를 주게 되었다”고 언론에 밝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