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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부모의 살해에 동의한 자녀는 한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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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러스트 이강훈 leebid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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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살해 후 자살, 끝나지 않은 이야기 ②



이세원 | 국립강릉원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자녀 살해 후 자살’을 서구권에서는 자녀 살해라고 부르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유교 문화권인 일본에서는 신쥬(心中)라 부른다. 본래 사랑하는 남녀가 함께 자살을 시도한다는 의미인 신쥬를 가부키 등 연극의 소재로 활용하며 눈물을 자극해 오다가, 오늘날에는 자녀 살해 후 자살까지 의미를 확대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동반자살’로 불러왔다. 그러다 2014년 국제아동권리 비정부기구(NGO) 세이브더칠드런이 동반자살 용어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하였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을 동반자살로 불렀던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부모가 아동인 자녀를 ‘나의 것’으로 여긴 잘못된 인식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인 자녀를 부모의 결정에 따라 좌우할 수 있다는 전제에 암묵적으로 동의해 왔기 때문에, 부모가 자신의 고통이나 어려움을 끝내기 위해 아동의 삶을 중지하는 것이 자녀를 보호하는 행위라고 여겨왔다.



이러한 인식에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부모의 권리를 아동권리에 우선한 사회·문화적 배경의 영향이 크다. 더불어 ‘부모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된 행위’라는 동정적 시선이 더해지면서, 피해 아동의 죽음을 참혹하게 여기기보다는 자살한 성인 망자를 연민의 시선으로 보았기 때문에, 아동의 마지막 절규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2018~2020년 발생한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 11건의 판결문을 검토한 결과, 행위자 중에는 가정적이고 자녀를 상당히 아꼈던 부모도 있었고, 사건 당일에 아동이 좋아하는 청포도를 사준 부모도 있었다. 엄마에게 살해당할 줄은 생각도 못 한 채 엄마에게 생일 선물을 사주고 싶다고 말한 아동도 있었다.



그러나 행위자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결심하면서, 본인이 죽고 나면 자녀의 삶이 불행하다는 이유 혹은 가정불화를 만든 배우자에 대한 복수로 자녀를 살해했다. 그 사건들에서 아동은 “엄마, 왜 그래, 정신 차려 나 ○○이야”라고 애원하며 발버둥 치기도 했으나, 결국 목이 졸려 질식한 채로, 날카로운 것에 찔린 채로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자녀에 대한 최후의 보호도, 구제도 될 수 없다. 이것은 극단적 형태의 아동학대일 뿐이다. ‘동반’이라는 표현은 서로 합의하여 함께 행동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앞의 사건 중에서 부모에게 살해당하는 것에 동의한 아동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들 사건을 비정한 부모의 탓, 즉 개인적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행위자는 극심한 절망과 출구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자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받쳐줄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다. 또한 본인 사망 이후 자녀가 적절한 돌봄을 받으며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아동보호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은 어린 자녀를 업고 죽어야 했던 개인의 비극이 아닌, 아동학대 살해이자 사회문제라는 사회적 인식의 확산이 시급하다. 이와 함께 정신적 고통, 가정불화, 경제적 압박 등에 처한 위기 가정을 조기 발견해 지원하도록 기존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한편, 더 굵고 튼튼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특히, 자녀 살해 후 자살의 주요한 원인인 동시에 공통적 기저는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부모의 정신질환 치료 시 아동인 자녀에 대한 통합적 사례 관리는 필수적이다. 부모의 자살 이후 남겨진 아동에게도 두터운 보호 시스템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부모의 사망 시 아동인 자녀가 인지하지 못한 채로 채무 상속이 이뤄지는 것에 대한 법률서비스 지원을 포함해, 안전하고 충분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가정위탁이나 소규모 양육시설 등 원래 가정과 유사한 아동보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21년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돼 아동학대 범죄를 범한 사람이 아동을 살해한 경우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된다. 아동학대살해죄에 형법상 살인죄보다 높은 양형을 선고할 수 있는 것은 피해 아동의 취약성과 사회적 보호의 필요성, 보호해야 할 부모가 살해했다는 신뢰 관계의 파괴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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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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