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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이병태의 한국사회 GPS] 진단도 처방도 부실한 K밸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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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오래된 화두다. 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말 우리 상장사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1배로 미국(4.7배), 싱가포르(5.9배), 대만(2.7배) 등에 비해 현저히 낮고 선진국 전체 평균 PBR(3.2배)은 물론 신흥국 평균(1.7배)에도 못 미친다.

청산가치보다 낮은 PBR 1배 미만의 기업이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코스피 상장사의 67.4%에 육박하고 있다. 지난해 주식 수익률이 안전자산 수익률보다 낮은 기업이 과반에 달하니 1400만 투자자들이 화를 내며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PBR을 기준으로 주가 적정 수준을 판단하고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 정확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PBR은 기업의 투자 순자산 장부상 가치와 시가총액의 대비로 주식 가치의 적정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기업의 내재적 가치와 주가와의 괴리를 통해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주가는 미국, 대만, 일본, 독일과 비교해 내재적 가치 대비 가장 높다. 우리의 낮은 PBR은 낮은 내재적 가치(수익성)를 나타낼 뿐이지 저평가를 시사하지 않는다. 한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시가총액은 최근 133.5%로 독일 60%, 영국 100%, 네덜란드 132.3%, 싱가포르 119.2%보다 높다는 것도 저평가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글로벌 기업의 수익은 한국 최고 기업의 평균 2.5배고 글로벌 기업들의 수익이 4% 성장하는 사이에 우리 기업들은 0.5% 증가하는 데 그쳤다. 결국 낮은 PBR은 낮은 수익 때문이고 효율적 시장 가설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23년 한국 기업의 배당수익률 또한 선진국의 평균 1.9%보다 높은 2.0%다. PBR이 가장 높은 미국은 배당수익률이 1.4%에 불과하다. 따라서 자주 지목돼온 소액주주 권익 보호의 측면에서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소극적이라는 비판 또한 과장됐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은 전 세계 GDP의 21%를 차지하지만 시가총액은 약 60%를 차지한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기업의 내재적 가치, 즉 기업의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높기 때문이다.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업인 오픈AI는 벤처투자자들로부터 기업가치를 약 210조원으로 평가받아 헥토콘의 반열에 올랐다. 이처럼 미래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높은 기업들의 주가가 높다.

정부가 일본의 '성공'을 벤치마킹한 밸류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성과는 매우 제한적이다. PBR이 조금 반등했지만 여전히 한국과 함께 선진국 중 PBR이 가장 낮은 나라다. 1989년 평균 PBR은 8배를 능가했지만 현재 우리와 별반 차이가 없다. 시가총액 상위 500대 기업 중 200개가 32개로 축소돼 일본의 낮은 PBR은 일본 경제의 쇠락을 반영한 것이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양적 축소에 대응해 우리 기업은 할 수 없는 구조조정부터 했다. 이러한 수익 방어 수단 없이 같은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 노동시장과 진입 규제,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들을 두고 높은 수익과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일부 대기업들 이익 성장이 주가 상승보다 높아 주주 환원 정책의 강화가 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들 대주주가 주가를 낮게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높은 상속세와 증여세라서 이를 시정하지 않고는 주가 부양에 적극적일 수가 없다.

정부와 정치권은 근본적 문제는 외면한 채로, 성급하게 도입부터 하고 시행도 못하는 금융투자소득세와 위험한 상법 개정안의 논란으로 자본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있다. 증시 밸류업은 한국 경제의 레벨업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병태 KAIST 경영대학 교수·컨슈머워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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