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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예술과 오늘]한강의 ‘다음’을 기다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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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나는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고집하는 한 배우의 삶을 그린 연극을 보고 있었다. 섬세한 연기, 묵직한 울림, 모든 게 좋았다. 오후 9시30분, 객석을 빠져나오며 스마트폰 전원을 켜자 적잖은 수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수신을 알리는 진동이 울렸다. 문자에는 ‘한강’ ‘노벨 문학상’이란 단어가 선명했다. <더 드레서>의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새로운 전율은, 돌고 돌아가는 귀갓길마저 흥겹게 했다. 혼자서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축배를 들이켠 나는, 일의 특성상 대부분 ‘초판 1쇄’일 수밖에 없는 한강의 작품들을 찾아, 다시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더 드레서>는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 지방을 전전하며 셰익스피어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선생님’과 그의 의상을 담당하는 ‘드레서’인 노먼이 주인공이다. 공연 당일 선생님은 치매인 듯 길거리를 헤매다가 병원으로 실려갔고, 우여곡절 끝에 극장으로 돌아왔지만, 그날 공연할 <리어왕>의 첫 대사 “프랑스 왕과 버건디 공을 모셔오게”를 기억하지 못했다. 극단의 배우이자 선생님의 부인인 ‘사모님’도, 무대감독 ‘맷지’도 공연을 취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은 “하고 말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야. 이건 의무야”라며 무대에 오를 결심을 한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않은 선생님은 때론 담대했다가도, 한순간에 겁쟁이가 되곤 했다. 무대에 오르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 생각했지만, 온전치 못한 기억은 선생님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그를 무대에 올린 사람은 16년 동안 살뜰하게 의상을 챙겨준 노먼이었다. 노먼은 그동안 옷만 챙긴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마음’까지 챙기고 있었다. 공연은 호평을 받았다. 스포일러가 될까 저어되지만, 숨이 끊어지는 날까지 연기를 멈추지 않겠다던 선생님은 그의 바람대로 되었다.

스웨덴 한림원은 199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폴란드의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를 선정하면서 “모차르트의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은 심보르스카는 ‘목록(Spis)’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내일 자 신문에는/ 무엇이 씌어 있을까,// 전쟁은 언제 끝나며/ 무엇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까,// 내게서 훔쳐간-내가 잃어버렸던/ 소중한 반지는/ 누구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을까,//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위한 공간은 어디에 있을까”라고 노래한 바 있다. 삶은 엄혹한 현실이고,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상식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만 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본질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자각을 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상투적인 말이지만,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대에 오르는 일이 스스로의 천직이면서도 두려움에 직면했던 <더 드레서>의 선생님처럼, 한강 작가의 글쓰기도 그러했을 터. 한편으로 한강 작가는 심보르스카의 시어처럼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위한 공간”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사람과 사물의 참모습을 바라보고자 했던, 그 지난한 노력은 노벨 문학상이라는 ‘하나의’ 결실을 맺었다. 여기가 끝은 아닐 것이다. 한강 작가는 노벨 문학상에 도취되지 않고 새로운 여정을, 이미 시작했을 것이다.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이유로, 이보다 더 명징한 사실은 없다.

경향신문

장동석 출판평론가


장동석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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