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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핵실험 성공 후 핵무장한 中, 2035년엔 핵탄두 1500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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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핵실험 60주년, 커지는 핵 야심

조선일보

중국은 1964년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SC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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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첫 핵실험 성공 60주년을 맞은 16일, 베이징 중국과학원 옌치후 캠퍼스에 위치한 ‘양탄일성(兩彈一星) 기념관’이 재개관했다. 양탄일성은 1964년 원자폭탄 실험과 뒤이은 수소폭탄 실험(1967년)·인공위성 발사(1970년)를 뜻하는데, 중국이 자국 군사력을 자랑할 때 빠지지 않는 성과다. 양탄일성 기념관은 중국 최고 자연과학 연구기관이자 장관급(級) 기구인 중국과학원에 2013년 둥지를 틀었고, 올해 초 개관 10년 만에 대대적인 새 단장을 했다. 이날 재개관 행사에서 허우젠궈(侯建國) 중국과학원장은 “신(新)시대 양탄일성 정신의 찬란한 장(章)을 이어가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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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중국이 핵무기 개발 60주년을 계기로 관영 매체와 국가기관을 동원해 ‘핵무장 강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매체 펑파이는 “60년 전 오늘 중국 원자폭탄이 터지며 울린 ‘동방의 굉음’으로 대국들의 핵 협박과 독점은 깨졌고, 중국인의 허리는 곧게 펴졌다”고 했다. 현재 중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약 500기(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집계)로 추정되는데, 미국 정부는 중국이 2035년까지 핵탄두 1500기를 배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의 핵탄두는 10년 전 1만6350기에서 올해 1만2121기로 줄었지만, 중국은 같은 기간 보유량을 두 배로 늘리며 프랑스(290기), 영국(225기)을 크게 앞질렀다. 중국은 줄곧 “핵무기를 선제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혀왔지만, 핵무장 확대에 따라 방침이 뒤집힐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중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25일 중국 로켓군이 훈련용 모의 탄두를 탑재한 ICBM 한 발을 태평양 공해 해역으로 발사한 것에 대해 “중국의 치솟는 핵 야망의 표식”이라고 평가했다.

한때 마오쩌둥이 ‘종이호랑이’라고 비하했던 핵무기는 중국에서 지난 60년 동안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1946년 8월 6일, 마오쩌둥은 미국 기자 안나 루이즈 스트롱과의 인터뷰에서 “원자폭탄은 미국이 남을 겁주기 위한 종이호랑이다. 보기엔 무서운데 실제로는 무력하다”고 했다. 그러나 10년 뒤인 1956년 4월, 마오쩌둥은 돌연 “아무래도 우리만의 원자폭탄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옛 소련 방문에서 핵무기의 위력을 직접 체감한 데다, 6·25전쟁과 제1차 대만해협 위기(중국이 1954년 9월 대만 진먼다오를 공격한 뒤 이듬해 4월까지 벌어진 전쟁 위기) 당시 군사력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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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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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1959년 6월, 소련이 자국 원자폭탄 제조를 돕겠다는 약속을 파기하자 자력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는 ‘596′ 프로젝트를 공식화했다. 당시 중국이 암묵적으로 정한 개발 시한은 1967년 1월이었다. 미국과 소련이 공동으로 추진하던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확정될 시기를 산정한 것이다. 이후 양국이 중국의 핵 프로젝트에 별도 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 마오쩌둥은 핵실험 일정을 앞당기라는 추가 지시를 내렸다.

도쿄 올림픽이 한창이던 1964년 10월 16일 진행된 중국의 첫 핵실험은 ‘추씨(氏) 아가씨’란 뜻의 ‘추샤오제(邱小姐)’란 작전명이 붙었다. 원자폭탄의 동그란 외형이 ‘추(球)’로 발음되는 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지은 암호명이고, 이에 따라 발사대는 ‘화장대’, 핵실험장의 전선 묶음은 ‘땋은 머리카락’이라 불렸다. 그렇게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보다 약 2년 일찍 중국 신장의 뤄부포호(羅布泊湖) 핵실험장에서 추샤오제가 ‘데뷔’했고, 중국은 아슬아슬하게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핵보유국 5국(미·영·프·중·러) 중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며 과점적 지위를 얻게 됐다.

중국은 핵실험 성공 이후 ‘완전한 핵무장’을 위한 후속 작업에 나섰다. 핵무기 발사에 쓰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발사체를 개발하고, 핵탄두를 대폭 늘린 것이다. 1966년 10월 27일, 중국은 처음으로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인 둥펑(東風·DF)-2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했다. 이듬해에는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1980년에는 태평양을 향해 중국 첫 ICBM인 둥펑-5를 발사했다. 중국은 1996년 포괄적 핵실험 금지 조약(CTBT) 가입으로 핵실험을 중단했다고 알려졌는데, 이전까지 46차례 핵실험이 이뤄졌다. 핵실험 과정에서 일어난 인명 피해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일본 전문가들은 19만4000명이 급성 방사선 노출로 사망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중 경쟁이 심화되고 군사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 등은 중국의 핵 전략 확장 야심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작년에는 뉴욕타임스(NYT)가 중국의 뤄부포호 핵실험장에서 시설 확장 등 핵실험 재개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관찰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핵과학자협회는 올해 초 중국이 고체 연료 미사일 발사를 위한 수백 개의 사일로(미사일 발사 장치를 넣어 두기 위한 지하 설비)를 건설해왔다고도 주장했다. 미 국방부는 중국의 핵 작전 개념이 최근 적국 핵 공격을 방지하는 ‘핵 억제력’에서 적의 공격 징후를 감지하는 즉시 공격하는 ‘경보 즉시 발사(LOW·Launch on Warning)’ 태세로 전환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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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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