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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사설] 재산 지키려 구청장직 내던질 거라면 출마는 왜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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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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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일 서울 구로구청장이 그제 자진 사퇴했다. 구로에서 자신이 운영하는 엔지니어링 회사의 170억원 상당 주식을 팔거나 백지신탁하라는 인사혁신처 결정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냈다가 1·2심에서 잇따라 패하자 구청장직을 아예 내던진 것이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구청장직을 중도 사퇴했으니 입이 백개라도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럴 거면 왜 구청장에 출마했는지 모를 일이다.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제도 시행이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기본적인 법규조차 제대로 모르고 구청장에 도전했다는 말인가.

공직자윤리법은 고위공직자가 직무 관련 기업 주식을 보유하는 걸 금지한다. 본인과 배우자, 자녀가 보유한 주식 가치가 3000만원이 넘으면 주식백지신탁심사위원회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위원회가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두 달 내 주식을 팔거나 금융기관에 신탁해 매각해야 한다. 고위공직자가 맡은 업무와 재산상 이익 간의 이해 충돌을 막기 위해서다. 문 전 구청장은 2022년 7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되자 회사 회장직을 내려놨으나 주식을 계속 보유하다가 위원회로부터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결정을 받았다.

백지신탁제도가 능력 있는 고위공직자 임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어 개선할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벤처기업가 등 실무형 인사를 의욕적으로 장관을 비롯한 요직에 등용하려 했다가 발목을 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김 전 구청장으로서도 이해 충돌을 피하기 위해 회사 정관을 변경하고 본점을 구로구에서 금천구로 이전하는 등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구정을 책임지겠다고 나선 선출직 인사가 주식 백지신탁을 못 하겠다고 중도사퇴한 건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다. 공직자 처신이 가벼워도 이리 가벼울 수 있을까. “자기 돈 170억원은 귀하고 (보궐선거에 쓰일) 국민 돈 수십억원은 흔한 것이냐”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가 임기 4년의 절반만 넘기고 중도 사퇴함에 따라 내년 4월 보궐선거를 치르게 됐다. 비용이야 둘째치고서라도 40만이 넘는 구민들이 받았을 충격과 마음의 상처는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단 말인가. 문 전 구청장을 후보로 내세운 국민의힘의 책임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국민의힘이 책임 있는 공당이라면 이런 결과를 빚은 공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구민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것이다. 내년 보궐선거의 원인 제공자로서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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