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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노벨상 강박 떨친 K-문학, 그 다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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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한림원에 전시된 한강 책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미국 또는 유럽 출신 73세 남성. 독일 매체 RND가 분석한 1901∼2022년 노벨상 개인 수상자 967명의 평균치다. 6개 부문 가운데 여성은 2년에 1명꼴로 나왔다. 국적별로는 미국이 3분의 1, 여기에 유럽 3대 강국이라는 영국·독일·프랑스를 더하면 3분의 2쯤 된다. 인구 1천만명에 불과한 스웨덴이 5번째로 많은 수상자를 낸 건 일종의 홈 어드밴티지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가 1명뿐인 한국의 만 53세 여성 작가 한강은 통계적으로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영국 도박업체 래드브록스는 한강의 수상 확률을 황석영과 함께 공동 29위로 꼽았었다.

한강이나 황석영에 베팅한 도박사만큼이나 한국 문단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상 소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문학계는 국격에 걸맞게 노벨상 작가도 한 명쯤 갖기를 오랫동안 염원하며 지원했다. 일본은 이미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년)와 오에 겐자부로(1994년)의 수상으로 탐미주의와 리얼리즘을 아우르는 세계적 문호를 보유한 터였다. 한국이 주빈국으로 초청된 2005년 프랑크푸르트도서전을 독일 문학평론가 카타리나 보르헤르트는 이렇게 기억했다. "나이 많은 남성 작가가 무대에 올랐고 한강을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한강은 겸손하고 조용했다. 53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시인 고은의 이름이 외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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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 노벨상 수상 기원 현수막(2010년 10월)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황석영은 '철도원 삼대'로 올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자 기자회견에서 "그 다음에 '할매'란 소설을 써서 노벨상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80대 노작가 주변에서 "욕망을 저어하지 말라"고 권할 만큼 외국에서 주는 상에 대한 집착은 끈질겼다. 10월 둘째 주 목요일마다 고은의 집 앞에 기자들이 진을 치던 희극적 풍경은 2018년 불거진 그의 성추문과 함께 사라졌다. 고은을 국가대표로 밀다가 좌절한 한을 한강이 풀어준 셈이다. 수상자 선정에 대륙별 안배를 감안한다는 추정이 맞는다면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노벨상 만년 후보가 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상을 더 미루는 '번외 성과'도 거뒀다. 아시아 작가 수상자는 프랑스로 망명한 중국 극작가 가오싱젠(2000년), 중국 소설가 모옌(2012년)에 이어 또 12년 만에 나왔다. 올해 하루키가 받았다면 최소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막막함이 부러움보다 컸을 것이다.

한강의 수상을 미국 가수 밥 딜런(2016년)처럼 뜻밖의 사건으로 보긴 어렵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작별하지 않는다'로 지난해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하며 노벨상에 한발씩 다가섰다. 물론 한국에서 '세계 3대 문학상'으로 부르는 노벨상과 부커상, 프랑스 공쿠르상을 비롯해 이름난 국제 문학상은 거개 서양 문학계가 깔아놓은 판이다. 한강이 속한 영국의 문학에이전시 RCW는 가즈오 이시구로(2017년·영국), 올가 토카르추크(2018년·폴란드), 압둘라자크 구르나(2021년·탄자니아)에 이어 최근 8년간 수상자의 절반을 배출했다. 예상을 깬 수상이라는 관전평과 달리, 한강이 이미 세계 문학계의 중심에 진입하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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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 축하 현수막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한국 문단과 언론이 노벨문학상 발표를 조마조마하게 기다리는 일도 당분간 없을 것이다. 평화상과 문학상이라는, 노벨상 중에서도 주목받는 두 분야에서 수상자를 냈다. 영화와 드라마, 팝과 클래식에 이어 '순문화의 정수'라는 문학에서도 서양 작가들을 제쳤다. 굳이 'K'를 내세우지 않아도 외국인들이 먼저 한국을 알아보는 시대가 됐다. 문화예술을 넘어 전염병 방역에 원자력발전소, 살상무기까지 올림픽 출전하듯 모조리 'K'를 붙이는 낯 뜨거운 인정투쟁은 쓰임새를 다해가고 있다. 이제는 진부하게만 들리는 관제 용어 'K'가 외려 문화예술을 틀에 가두고 발목 잡는 건 아닌가. 한때 영원할 듯 요란하던 '브릿팝'이니 '홍콩 누아르' 같은 말이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데 한 세대도 걸리지 않았다. 유럽 경제의 엔진에서 문제아로 전락한 독일에서 신뢰의 대명사로 통하던 '메이드 인 저머니'의 미래를 두고 벌어지는 논쟁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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