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8 (금)

“내 황금기 6년 남아… 마음속 3권 쓰는 데 몰두할 것”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강, 노벨상 후 첫 외부 행사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참석

“저의 일상이 그리 달라지지 않기를 믿고 바랍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는 사람이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써가면서 책 속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한강(54)이 수상 발표 이후 일주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17일 오후 5시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열린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그는 꽃다발을 안고 배시시 웃었다. 화려하지 않은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노벨상 발표 이후 두문불출하던 그의 첫 외부 행사다.

지난달 19일 포니정재단(이사장 정몽규)은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 현대차 설립자인 고(故) 정세영 HDC그룹(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의 애칭 ‘포니정’에서 이름을 땄다. 상금 2억원과 상패를 수여한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한강 작가는 가까운 지인들에게 “여기는 가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는 말을 전했다. 이미 잡혀 있던 행사인 만큼 예정대로 참석하기로 한 것이다.

조선일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전기병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취재진 출입을 제한한 비공개 행사로 진행됐다. 사진기자단만 촬영을 위해 행사장에 입장했다. 수상 소감은 행사장 스피커를 통해 취재진에게 전달됐다. 이후 재단 측이 영상을 공개했다. 한강 책을 펴낸 출판 3사 관계자들은 자리를 함께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 문학동네 이현자 편집국장과 이상술 부국장, 창비 염종선 대표 등이 시상식에 참석했다.

마이크 앞에 선 한강 작가는 “원래 이틀 전으로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는데 진행했다면 이렇게 많은 분이 걸음 하지 않으셨어도 되고, 이 자리 준비하신 분들께도 이만큼 폐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며 “허락해 주신다면 궁금하셨을 말씀들 간략하게나마 드리겠다”고 했다. 특유의 차분하고 나긋한 목소리였다.

한강은 “(노벨위원회의) 전화를 끊고 언론 보도까지 확인하자 현실감이 들었다”며 “지금까지 많은 분이 진심으로 따듯한 축하를 해주셨다. 많은 분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셨던 지난 일주일이 특별한 감동으로 기억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올봄부터 써온 소설 한 편을 완성하려고 애써보고 있다. 바라건대 내년 상반기에 신작으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소설을 완성하는 시점을 스스로 예측하면 늘 틀리곤 한다”고 했다.

오늘 자리를 위해 준비했다는 수상 소감에서 한강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담담한 일상에서 쓰고 싶은 소설을 마음속에서 굴리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1994년 1월에 첫 소설을 발표했으니 글을 써온 지 꼭 30년이 되는 해”라며 “지난 30년 동안 제가 나름대로 성실히 살려 애썼던 현실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한 줌의 모래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듯 짧게 느껴지는 반면, 글을 쓰며 보낸 시간은 마치 삼십 년의 곱절은 되는 듯 길게, 전류가 흐르는 듯 생생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어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된다”며 “작가의 황금기가 50~60세라고 한다면 6년이 남았다. 6년 동안 마음 안에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데 몰두하고 싶다”고 했다.

축사는 강지희 문학평론가(한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가 읽었다. 강 평론가는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서 동물성을 가진 ‘식물-되기’ 한강론’을 투고해 당선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다. 강 평론가는 “그 글을 썼을 때 저는 스물두 살이었고 선생님은 어리바리하던 저에게 쉽게 마음을 열어주셨다. 어린 나이에 등단한 덕에 선생님이 방심한 틈을 타 가까워졌다”며 웃었다. “선생님께 작은 평안함과 소소한 행복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용기 있게 세상을 대변하고 빛을 찾아나가는 글을 계속 써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강 작가는 오후 5시 40분쯤 시상식이 끝나자 만찬에 참석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취재진을 피해 행사장 쪽 문을 통해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그에게 몇몇 취재진이 “소감 한마디만 더 부탁한다”고 물었지만 답하지 않고 곧장 차에 탔다.

조선일보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을 찾은 소설가 한강. 40여분간의 시상식이 끝난 뒤 그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차를 타고 떠났다. /황지윤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노벨상 발표 이후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쏠렸다. 수상 소식을 들은 당시 “아들과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있었다”던 한강 작가는 10일부터 한동안은 서울 서촌 인근 자택에서 머무른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공개된 스웨덴 공영방송 SVT 화상 인터뷰 역시 자택에서 진행됐다. 영어로 진행된 이 인터뷰에서 한강 작가는 “지금은 주목받고 싶지 않다. 이 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나는 조용히 있고 싶다.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부친에게)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황지윤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