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와 산책할 때마다 동네 어른들을 만난다. 늘 ‘운동 가세요?’ 하는 인사말을 건네는 그들. 그들 눈엔 사람만 보일 뿐 함께 걷는 개는 관심 밖이다. 우리 명분은 ‘개 산책’이나, 이곳 어른들에겐 ‘사람 운동’이 우선이다. 늘 그런 인사말을 건네는 점에 의문을 갖고 이웃 개들을 관찰했다. 반 평 이내 좁은 공간, 2m 안팎 짧은 목줄에 매여 지내는 참상이 보였다. 대부분 1년 동안 단 한 번도 주인과 산책하거나 잠시 풀려나는 자유도 누리지 못한 채 일생을 보내는 그들. 고령 어른들이 개까지 끌고 다닐 수 없는 현실은 시골 개들에겐 일종의 불운이라 할 수 있을까. 개와 함께 걷는 우리에게 늘 ‘운동 가세요?’란 물음을 던지는 건 당연했다.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사람들 때문에 도망가기 바빠 먹지 못하는 서울보다, 음식은 보잘것없어도 마음 편히 먹을 수 있는 시골이 낫다는 동물 우화가 ‘서울 쥐와 시골 쥐’ 이야기다. 그와 달리, 서울 개는 매일 산책하고 집 안에서 사람과 함께 편히 지내지만 시골 개는 늘 매여 있고 집 밖의 우리에 갇혀 지내며 먹이도 부실하니, 개에겐 서울이 낫다. 풍요는 허울뿐이고 마음도 불안한 서울 쥐와, 물질로는 초라하나 마음이 평안한 시골 쥐. 안락함과 풍요를 구가하는 서울 개와, 부자유와 빈곤에 고통당하는 시골 개. 서울과 시골의 입지나 처지에 따라 행·불행의 대비는 명료하고 정확하다.
세대별 인구가 골고루 섞여 복잡하지만 문명의 혜택과 생활의 편의를 누리는 서울 사람들에 비해, 자유로이 나다닐 수도 없고 생활 편의 또한 부실한 전원 노인들 처지는 그대로 ‘서울 개/시골 개’ 대비의 알레고리에 투영되어 있는 것 아닌가.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 |
[조규익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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