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의 근원과 역사 추적한 연구서
한센인 고통 곳곳에 남은 고흥 소록도 |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우생학은 차별을 전제로 한 과학이다. 나치 정권은 우생학에 근거해 정신적·신체적 장애가 있는 이들을 선별해 사회적으로 격리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스실로 보내졌다.
우리 민족도 우생학의 피해자가 된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다. 일제는 우생학적 차별과 배제 전략을 활용해 조선을 통치했다. 놀랍게도 당시 일부 조선인들은 이런 정책을 환영했고, 나아가 우생학을 더 수용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왜 그랬을까.
김재형 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를 비롯해 사학, 문화교양학, 의학 등을 전공한 교수와 연구자들이 함께 쓴 '우리 안의 우생학'(돌베개)은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우생학의 근원을 추적한 연구서다.
모자보건법 개정 촉구 |
책에 따르면 우생학은 민족의 선천적 소질 중 우수한 요소를 개발하고 열등한 요소를 제거할 방법을 모색하는 과학적 방법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일부 지식인들은 민족 간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생학적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우생학을 통한 민족 발전의 꿈은 1930년대 조선 사회에서 '우생운동'을 촉발했다.
해방 이후에는 유전학자들과 의학 전문가들이 "민족 우생"의 이름으로 우생학을 과학적으로 온당한 분야이자 담론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여파는 1973년 제정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자보건법'까지 영향을 미쳤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우생학적 이유가 확인되는 경우 불임수술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가가 수술을 강제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 법을 근거로 1983년부터 1998년까지 전국의 8개 시설에서 지적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불임수술이 시행됐다.
강제 단종과 낙태 수술을 경험한 한센인들도 우생학의 피해자다. 한센병은 감염병이지 유전병이 아니다. 하지만 일제에서는 다양한 우생학적 논리를 동원해 한센인에 대한 단종수술을 정당화했고, 해방 후에도 이 같은 기조는 유지됐다.
[돌베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
저자들은 지적장애인, 혼혈인, 한센병 환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의 근거로 우생학이 악용돼 왔고, 이런 우생학의 인습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안에 깊이 내재해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들은 프롤로그에서 "우생학이 어떻게 사회적 약자들을 부적격자로 구분하는지, 그로 인한 차별을 어떻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만드는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보건, 복지, 교육 등 여러 분야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드러냄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차별의 한 양태를 밝히고 문제 삼으려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밝혔다.
320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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