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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택시회사가 R&D한다며 탈세…기업 연구소, 불법 코인리딩방 둔갑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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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난 연구소 관리 실태

정체불명 연구소 쏟아지지만
작년 2892곳 보고서도 못내

퇴출돼도 언제든 다시 설립
연구소 검증 조사원 41명 뿐

“1억~3억짜리 용역 따주겠다”
불법 정책자금 브로커 판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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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 사각지대가 크다는 점을 악용해 이른바 유령 연구소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국민 세금에서 나가는 정부 연구개발(R&D) 지원이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

국내 모 유사투자자문 업체는 2018년부터 기업연구소를 운영했다. 이 업체는 투자자들을 상대로 300~100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수천 만원의 리딩비를 받아챙기고, 상장폐지 위기에 놓은 주식을 매수하게 하는 등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현재 해당 회사의 홈페이지까지 폐쇄된 상태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기업 부설연구소 명단에는 여전히 정상 연구활동을 하는 것처럼 이름이 버젓이 올라와 있다.

문제는 이 연구소가 R&D 활동을 한 것처럼 신고하고 버젓이 세액공제를 받았다는 점이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산기협)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기업부설연구소에서 연구원이 아닌 사람을 연구원으로 허위 신고한 경우는 10건에 달했고, 연구소 공간이 아닌 장소를 부정으로 신고한 경우도 11건 있었다. 주소 이전 후 변경 신고를 하지 않아 산기협이 추적이 불가능한 연구소도 130곳에 달했다. 이 중 7곳은 연구개발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현지조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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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인정한 기업 부설연구소 명단을 살펴보면 이처럼 R&D와 무관한 곳들이 수두룩하다. 신용카드 배달업체와 지방 소재 택시업체도 부설 연구소를 만들어 R&D 세액공제 혜택 등을 노리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021년부터는 법적으로 서비스업까지 기업 부설연구소 설립이 가능해지면서 정체불명의 연구소들이 쏟아지고 있다.

기업 부설연구소는 연구비와 인력개발비에 대해 25%의 세액공제가 이뤄지고 설비투자에 대해서도 10% 세액이 공제된다. 연구목적으로 수입한 물품이 있을 경우 최대 80%까지 관세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혜택을 노리고 기업 부설연구소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해 R&D 세액공제를 받은 연구소는 모두 4만3378곳으로 전체 세액공제 규모는 4조5221억원에 달한다.

유령 연구소가 창궐하는 것은 사각지대 문제가 가장 크다. 부설연구소 인정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고, 관련 업무는 산기협이 위탁 수행하는 구조다. 현재 산기협 산하 조사원 수는 41명인데 조사원 1명이 하루에 5~6개 연구소를 확인한다고 해도 전수 조사하는 데 2년이 넘게 걸린다. 국세청의 검증 전담인력도 39명에 불과하다.

진입과 재진입이 수월하다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초기 인정요건이 까다롭지 않고, R&D 활동 입증이 사후검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부실 연구소의 진입도 용이한 구조다. 또 불법이 확인돼 연구소 설치가 취소되더라도 1년만 지나면 재설립할 수 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연구개발활동 없음, 준수사항 위반 등으로 실컷 직권취소를 해본들, 연구소를 또 만들어서 세액공제를 받아가기 때문에 국민 세금이 줄줄 새고 있다”며 “기업 부설연구소 인정 업무를 맡고 있는 산기협 관계자를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하자 홈페이지에 게재된 연구소 상세주소가 다 지워지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정책자금을 빼먹을 수 있도록 돕는 ‘브로커’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정책자금 브로커는 최단기, 최소비용으로 연구소를 설립할 수 있다는 약속으로 기업을 유인한다.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산기협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국가연구과제 제안서가 C플랫폼 등에서 수 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했다. 해당 사이트에서는 ‘정부과제’로 검색해보면 정부 통합연구비관리시스템인 RCMS를 전면에 내세워 용역비로 500만원을 제시했다. 홍보 문안에는 총 연구비가 1억이상~3억미만으로 되어 있고, 해당 용역과제 상품에는 “선정될 수밖에 없는 사업계획이네요. 혹시 궁금한 것 있으면 연락드려도 될까요?”라는 낚시성 리뷰까지 달렸다.

브로커들은 ‘A진흥원’, ‘B기업인증지원센터’ 등 사실상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행태도 보이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해 R&D활동 불분명 등의 이유로 세액공제를 취소한 상위 20개 법인에서 컨설팅업체와 44건의 용역거래가 이뤄진 것을 확인했다. 국세청은 향후 본청과 지방팀의 전담인력을 통해 R&D 세액공제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세액공제율이 최대 40%인 신성장·원천기술과 최대 50%인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고율항목도 검증을 확대할 예정이다.

허 의원은 “허술한 기업부설연구소 관리로 정부예산이 낭비되지 않도록 연구비관리 시스템을 고도화하여 실시간 관련 정보연계로 부실과제와 부당연구비 지급을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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