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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20년 반도체맨이 말하는 삼성전자 위기론[딥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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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위기론’이 잦아들 줄 모르죠. 주가가 5만원대에 머물면서 주변에서 부쩍 ‘삼성전자 주식 살까?’라고 묻는 사람들도 많아졌는데요.

왜 삼성전자가 위기인가에 대한 전문가 분석은 많습니다. 그 중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게 조직문화인데요. 삼성전자 조직문화, 내부 직원은 어떻게 볼까요. 극도로 신원 노출을 꺼리는 터라, 완전 익명을 보장하고 한 직원을 인터뷰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에서 20년 정도 일한 엔지니어입니다. 그는 “칸막이가 많은 회사라 다 아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는데요. 그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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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삼성전자가 위기라고 한다. 내부 직원은 어떻게 볼까.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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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없애기 위해 도전도 없앴다

-조직문화를 고치겠다면서 전영현 DS부문장이 강조하는 게 ‘현장의 치열한 토론 문화’ 재건이다. 토론 문화라는 게 뭔가? 원래는 삼성전자 반도체에 치열한 토론 문화라는 게 있었는데 사라진 건가?

“초반, 2010년 즈음엔 있었다. 예컨대 문제점이 있을 땐 그걸 놓고 같이 가설을 세워서 ‘이런 테스트 결과들이 그 가설과 어긋나지 않냐’면서 다른 가설로 얘기하고, 이렇게 서로서로 의견을 나눴다. 또 새로운 걸 해야 할 땐 이 방식이 좋을지 저 방식이 좋을지, 장단점을 토론했다.”

-그런 기술적 토론은 당연히 지금도 해야 하지 않나?

“잘 안된다. 효율성, 즉 변화를 주지 않고 더 쉽게 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한다. 예전엔 실무자가 의견을 내면 그래도 검토해 보고 위로 올라가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답이 정해져 있다. 실패를 절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어려운 새로운 건 아예 안 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 없이 세상이 얘기하는 기술 트렌드는 일단 다 하기도 한다. 괜히 어느 걸 빼놨는데, 경쟁사가 그걸로 뜨면 안 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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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된 계기가 있나?

“권오현 전 DS부문장(2011~2017년)은 선택과 집중을 하는 편이었다. 건강에 신경 써야 한다면서 ‘스마트 워크(Smart Work)’를 강조했고. 그런데 후임 김기남 전 부문장(2017~2022년)은 마이크로 매니지먼트 스타일이었다. 이재용 회장이 참석하는 ‘토요 주간회의’가 생기더니 일주일 내내 보고용 회의를 하는 문화가 생겼다. 요즘 얘기되는 HBM(고대역폭메모리) 철수 결정도 그때 이뤄졌다.”

-HBM이 당시엔 별로 돈 되는 게 아니라서 그랬을까?

“HBM은 D램을 차곡차곡 쌓는 거다. 당시엔 D램 쪽 입김이 셌으니까 ‘우리는 D램 기술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본 거다. ‘집중을 잘해서 D램을 잘 만들면 되지, 뭐 하러 쌓고 있냐. 쌓는 게 쉬운 일도 아닌데’라는 식이었다.”

-쌓는 기술이 어렵다고 하더라. 또 파운드리의 패키징 기술도 TSMC와 차이가 많이 난다던데.

“입사 초기만 해도 삼성전자가 패키징을 잘한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웃소싱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최신 패키징 기술에서 뒤떨어지게 됐다. 요즘은 기본 패키지뿐 아니라, PI(Power Integrity, 전원 무결성), SI(System Integrity, 신호 무결성)가 중요한데 그런 전문가도 아마 많지 않을 거다.”

-원래 잘하던 걸 계속 더 잘하려고만 하다 보니, 다른 걸 놓친 듯하다.

실패를 하더라도 미래를 준비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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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화성캠퍼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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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재무 라인이 우위

-직전 경계현 전 부문장(2022년~2024년 5월)은 뭔가 의욕적으로 바꿔보려 하지 않았나?

“그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벤치마킹하려고 했다. 교육을 더 많이 하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그런 노력을 했는데. 그 당시 성과는 고꾸라지던 때였고, HBM으로 SK하이닉스는 날아가면서 이미 분위기가 엉망이었다. 결정적으로 노조와의 교섭에서 경계현 사장이 휴가 하나를 더 주기로 협상했는데, 서초에서 ‘노’하면서 노조는 파업하고 경계현 사장은 잘렸다.”

-서초가 뭔가?

“사업지원TF. 흔히 ‘HH’라고 부른다. 우리가 ‘서초에 보고 올린다’고 얘기할 때, 그 서초는 HH이다. 반도체 사업을 총괄하는 부문장이 결정할 수 없는 것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기술보다 재무나 법무 쪽이 더 힘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건가?

“애플이 2019년 아이폰에 삼성전자 모뎀을 넣고 싶어 했다. 당시 시스템LSI 사장은 하고 싶어 했지만 서초에서 ‘노’했다. 아이폰은 갤럭시의 경쟁자인데, 거기에 팔면 아이폰 경쟁력이 좋아질 거라고 본 것. 그때 공급했으면 우리가 (퀄컴을) 잡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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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총파업 중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사 앞에 사측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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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결정을 HH가 한다고 직원들은 보고 있나.

“그렇다. 보고서 쓸 때 ‘초등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게 쓰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수준의 기술 지식을 가진 경영진이 결정하는 게 말이 되나.”

-반도체 엔지니어가 초등학생 수준으로 내부 보고서를 쓴다고?

“기술용어를 최대한 쓰지 않아야 한다. 그게 도저히 안 돼서 기술용어를 써야 하면, 그걸 쉽게 풀어서 밑에다 써준다.”

-그거 쉽지 않겠다.

“그리고 결정을 위에서 내리기 때문에 보고 라인이 매우 길어졌다. 파트→그룹→팀→개발실→총괄→서초, 이렇게 보고가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결정도 느리고 중간에 변형이 된다. 만약 실무진이 ‘이 일은 10가지 리스크 중 8~9개가 빨간색(위험하단 뜻)’이라고 보고를 올리면 ‘빨간색을 좀 노란색으로 바꿔’라고 한다. 그래서 노랑으로 바꿔서 한 번 더 보고가 올라갔다 오면 ‘굳이 노란색으로 해야 해. 좀 파랗게 바꿀 수 있는 거 없어’라고 한다. 그리고 한 번 더 올라가면 ‘저거 하나를 꼭 노랗게 해야 해. 너무 거슬린다. 조건을 좀 달아서 파랗게 한번 해봐’라고 한다.”

-전영현 부문장이 사내 게시판에 올렸던 글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겠다. ‘문제를 숨기거나 회피하고 희망치만 반영된 비현실적인 계획을 세운다’는 게 그런 건가.

“임원들은 당장 내년에 (공급에) 들어가야 자기 실적이 되니까 빨리 가려고만 한다. 어차피 망가지는 건 후임자 때니까. 부서 간 장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여러 부서가 함께 일할 때, 가능한 한 자기네 부서 문제는 계속 숨긴다. 그러다 다른 부서에서 문제가 생기면 ‘저것 때문에 안 된다’면서 묻어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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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은 이달 초 3분기 실적 발표 뒤 이례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하고 ‘조직문화와 일하는 방법의 혁신’을 약속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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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전자’에도 물 안 타는 이유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들 이직이 요즘 더 많아졌나?

“중국으로 가면 돈을 3~5배, 많게는 9배까지도 준다는 얘기가 있다. 주로 공정 쪽 엔지니어를 많이 빼가는데, 지난해엔 설계 쪽도 제안이 오더라. 특히 AI 관련된 인력은 많이 빠져나갔다. 회사에서 대접을 잘해주면 왜 나가겠나. 일을 잘해도 보직자한테만 상위고과를 깔아주니, 실무자는 고과를 잘 받을 수가 없는 구조다.”

-많은 사람이 주 52시간제가 문제라고 지적하는데?

“52시간제가 문제라면, 52시간을 꽉 채우고도 일을 더 하려는 사람이 90%는 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일을 하고 싶은데 시간이 차서 못 하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우리는 포괄임금제라 주당 16시간까지는 초과근무 해도 시간외수당이 없다. 그러니까 젊은 직원은 ‘내가 왜 공짜로 일을 하지?’라며 40시간만 채우면 가버린다. 52시간제가 문제가 아니라 차라리 그 16시간에 대해 풀어주면(시간외수당을 지급하란 뜻), 주당 10시간이라도 더 일하려는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워낙 이런 분위기를 알아서 나도 8층이지만(과거 삼성전자 주식을 8만원대에 샀다는 뜻) 추가매수를 안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맨이 5만원대에도 물을 안 탄다?

“자칫 회사가 인텔 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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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문화를 바꾸려면 중간관리자부터 달라져야 하지만 그들이 바뀌기란 쉽지 않다. 사진은 삼성전자 화성캠퍼스의 3나노 생산라인.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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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들 어느 정도 아는 것 같다. 해법은 뭘까.

“바꾸기 쉽지 않다. 경계현 전 사장이 시스템을 바꾸려고 했지만, 그 아래 임원과 부서장은 지난 10년 동안 보신주의 문화에서 발굴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뭘 알지도 못하면서 바꾸려고 하냐. 힘들다’고 하고, 아래 직원들은 ‘바꾸겠다고 얘기했는데 실망했다’고 하고. 층층이 나뉘어 딴소리했다.

정말 바뀌려면 중간관리자를 대거 바꿔야 한다. 지금은 아예 결정을 안 하고 보고만 올린 뒤 저 꼭대기만 쳐다보고 있다. 원래 팀장이 ‘내가 책임질 테니 이거 해보자’ 해야 하는데, 팀장 본인이 ‘난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몰라요’라고 한다. 그럼 팀원들이 어떻게 힘이 나겠나.

지금 경영진이 보기엔 ‘난 잘하는데 왜 밑에 애들은 치열한 토론을 안 하지?’라고 할 거다. 알고 보면 그동안 자기들이 보고 받고 리젝트시키길 반복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직원들은 ‘토론해봤자 어차피 안 들어준다’고 하는 것.”

-엔비디아에 HBM3 납품이 불발되면서 삼성전자가 HBM4로 승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1, 2, 3단계가 다 늦었으니까 이제 4단계로 퀀텀점프를 해보겠다는 건데. 기초가 없는데 그게 가능할까. 이제 설계 스크립트를 봐도 아무도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 이게 왜 필요한지, 또는 뭐가 필요 없는 건지 히스토리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지만, 그러려면 1년으론 안 된다. 그런데 SK하이닉스는 1년 뒤에 HBM4를 내놓지 않겠냐. 또 완전히 기초부터 다시 시작할 만큼 트레이닝이 돼 있는 사람도 지금은 없는 것 같다.” By.딥다이브

치열함, 토론, 자율성, 도전, 모험, 자부심. 미국 보잉과 인텔은 이런 가치를 잃어가면서 추락한 기술 기업의 사례로 꼽히곤 합니다. 과연 삼성전자는 그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부디 그러하길 바라며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삼성전자가 위기입니다. 반도체 현장의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고들 얘기하죠. 내부 직원은 ‘절대 실패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엔지니어의 토론을 없애고 잘하는 것만 계속 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기술보단 재무 라인이 의사결정권을 가지면서 보고라인은 길어졌습니다. 의사결정은 느려지고, 보고 내용은 중간에 변형됩니다.

-보신주의에 물든 조직문화를 한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습니다. 위에선 젊은 직원들과 52시간제를 탓하지만,사실 진짜 책임은 실무진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아온 경영진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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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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