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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1 (월)

[인터뷰] 채정훈 미래벤처 부사장 “AI반도체만 보지 말라… 전력·아날로그 반도체서 다양한 기회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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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채정훈 미래에셋벤처투자 부사장이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미래에셋벤처투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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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4년 10월 17일 15시 31분 조선비즈 머니무브(MM)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올해 전세계에서 가장 ‘뜨거웠던’ 주식 종목을 하나만 고르라면 열에 아홉은 엔비디아를 택할 것이다. 인공지능(AI)의 비약적인 성장은 자연스럽게 AI 반도체의 수요 폭증으로 직결됐고,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이끄는 엔비디아는 어느새 세계 시가총액 1위를 노리는 거대 기업이 됐다.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을 두 곳이나 보유한 우리나라가 이 시대 흐름의 한가운데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 증시도 연초부터 줄곧 반도체에 울고, 반도체에 웃고 있다. 주식시장의 영향을 정통으로 받는 벤처투자 시장도 다르지 않다. AI 반도체를 비롯한 반도체 밸류체인에 벤처캐피털(VC) 자금이 대거 흘러 들어갔다.

채정훈 미래에셋벤처투자 부사장은 업계에서 손꼽히는 반도체 전문가다. 대학에서 재료공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 민간 기업의 연구소에서 사회생활의 첫발을 뗐다. 전문연구요원으로서 병역을 이행하기 위해 쌍용중앙연구소 전자재료연구실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당시 사업 확장을 노리던 쌍용은 신입 사원이나 다름없는 채 부사장에게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이끌 기회를 줬다. 이후 채 부사장은 삼성전기 적층박막사업부 기술팀에서 근무했다. 이곳에서는 생산 공정의 전 과정을 익혔다.

전형적인 공학도인 채 부사장의 삶을 완전히 바꾼 계기는 갑작스레 찾아왔다. 주로 금융계 출신이 주를 이루던 벤처캐피털(VC) 업계가 정보기술(IT) 붐에 발맞춰 산업계 출신 인력을 채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000년 보광창업투자에서 벤처캐피털리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했고, 이후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를 거쳐 2013년 미래에셋벤처투자로 자리를 옮겼다.

미래에셋벤처투자는 올해 ‘반도체 빅딜’의 두 주인공인 리벨리온과 사피온에 모두 투자한 회사이기도 하다. 채 부사장을 만나 우리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와 미래, 투자 전략 등을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현재 운용자산(AUM)은 얼마나 되는지.

“벤처 부문에서만 약 1조원을 운용하고 있다. 사모펀드(PE) 부문까지 합치면 1조7000억원 정도 된다.”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골고루 투자 중이지 않나.

“반도체 소재·장비·설계 3대 분야에 고루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설계 업체에 대한 투자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반도체 소재 및 장비 업체들이 이미 성숙해져 있어서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장비 업체들은 이제 VC를 자체 설립해 직접 투자까지 할 정도다. 그래도 여전히 좋은 소재 및 장비 업체들을 계속 찾고는 있다. 아직 국산화가 많이 이뤄지지 않은 분야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반도체 장비 부문에서 주목할 만한 회사가 있는지.

“증착 장비나 검사 장비 회사들에 투자했다. 반도체웨이퍼 테스트 장비 업체 중에선 대표적으로 코리아인스트루먼트가 있다. 최근 이상파트너스에 인수됐고 곧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총회가 열린다. 코리아인스트루먼트에는 10년 전 15억원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후속투자를 계속했다. 처음 투자했을 때 기업가치가 200억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10배가량 성장했다. 연 매출액이 약 1000억원 수준이고 앞으로도 고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다.”

─반도체 설계 쪽은 어떤가. 전세계적으로 AI 가속 칩 쪽에 대한 투자가 주를 이루는데.

“AI의 연산 속도를 높여주는 가속 칩 기술은 엔비디아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 대항마가 될 후보들에 투자가 압도적으로 쏠리고 있다. 국내에도 리벨리온, 사피온, 퓨리오사 같은 스타트업들이 있지 않나. 아직은 초기 단계에 있고 매출을 거의 못 내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숫자가 나온다면 굉장한 일이 될 것이다.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이 국내 AI 반도체 시장에서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다들 주목하고 있다.

다만 국내 AI 반도체 시장은 여전히 해외에 비해 규모가 작고, 기술적으로도 뒤처져 있다. AI 칩 개발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웨이퍼 한 번 생산하는 데만 50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AI 반도체 외에도 전력 반도체 같은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분산하고 있다. 반도체 펀드에서는 AI 칩뿐만 아니라 전력 변환 및 효율성 개선에 필요한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는 업체도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AI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만, 그 기대가 현실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적 완성도와 시장 수요의 일치가 필요하다.”

─전력 반도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전력 반도체는 전력을 변환하는 핵심적인 소자다. 쉽게 설명하자면,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할 때 교류 전원이 들어오지 않나. 그런데 교류 전원은 휴대폰 안에 있는 2차 전지를 충전할 수 없다. 그래서 이를 직류로 바꿔줘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게 인버터이며 거기에 들어가는 핵심 소자가 전력 반도체다.

전력 반도체는 전기차의 전력 효율을 높이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교류를 직류로 바꿔서 배터리를 충전했다가, 시동을 걸면 모터는 다시 교류로 작동한다. 전력을 변환할 때 손실이 많이 생기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하려는 니즈가 많다. 전력 반도체는 95%가 실리콘 계열이며 그 중 갈륨나이트(GaN) 계열, 실리콘카바이드 계열이 있다. 갈륨나이트나 실리콘카바이드를 쓰면, 반도체 칩 사이즈를 작게 줄이면서도 고전압을 견뎌내도록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갈륨나이트라이드 전력 반도체를 개발하는 칩스케이라는 회사에 40억원을 투자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많은 애정을 갖고 있는 회사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갈륨나이트라이드를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외부 파운더리를 이용해 생산까지 하는 회사다."

─국내 반도체 산업의 현황과 국산화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는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설계, 생산할 수 있는 회사가 부족해 대부분의 핵심 반도체는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력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는 국산화가 필수다. 아날로그 반도체의 경우, 텍사스인스트루먼트 같은 글로벌 대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이를 대체할 기술이 거의 없는 상태다. 우리는 국내 스타트업 ‘관악아날로그’에 투자했다. 김수환 서울대 교수가 설립한 회사로, 아날로그 반도체 칩을 자체 설계하고 있다. 설계 후 생산은 TSMC와 같은 외국 파운드리 기업에 맡기는 팹리스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도체 기술의 국산화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설계 역량을 강화하고, 특화된 애플리케이션에 맞춰 반도체를 개발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미국이나 유럽의 대형 기업들과 바로 경쟁하기보다는,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된 기술로 차별화를 시도하는 게 중요하다. 현재 한국 시장은 국산화를 추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며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유망하다고 보는 반도체 분야가 있다면.

“무선통신칩 시장이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이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무선통신칩 중 3G, 4G 통신칩은 퀄컴이 주도하고 있으며, 블루투스 칩은 대만 업체들이 대부분 점유하고 있다. 와이파이칩 시장도 외국 회사들이 주도한다. 우리는 블루투스 저전력 칩을 개발하는 ‘스카이칩스’라는 회사에 투자했다. 대형 마트에 가면 가격표가 있지 않나. 그게 다 전자 제품이다. 프린트를 해서 붙이는 게 아니다. 이런 걸 전자 가격 표시기(ESL)라고 하는데, 스카이칩스의 제품은 그런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최적화돼 있다. 중앙에서 디지털 가격 관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대만 기업들과 기존 시장에서 경쟁하기보다는 무선통신칩 같은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는 게 유리하다.”

─투자할 회사를 어떻게 고르나.

“내가 투자한 기업 중 설립한 지 1~2년 된 회사는 거의 없다. 기술을 개발하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어떤 시행착오를 겪었는지 보이는 회사에 주로 투자한다. 그래서 내가 투자한 회사의 대표들은 대체로 나이가 많다. 창업 전 산업계에서 적어도 10여년의 경력을 쌓았고 노하우를 많이 축적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 늘 산업계 전문가들과 많이 교류한다. 모임에 가서 귀동냥도 하고 사람도 많이 소개받는다.

─벤처 투자 시장이 2021~2022년 활황기를 지나 아직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과거 경험을 토대로 후배 심사역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내가 2000년 5월 벤처 투자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그때가 코스닥시장의 최전성기였다. 삼성SDI 시가총액이 1조원인데 새롬기술 같은 곳이 3조원이었다. 이후 닷컴 버블이 무너졌고 2001~2003년 정말 힘든 시기를 보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 기반 기술을 가진 회사에 좀 더 집중하고 긴 호흡으로 투자했던 사람들이 업계에 오래 남아 투자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때일수록 산업계의 전문가들을 더 많이 만나봐야 한다. 그들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들어봐라. 거기에 지혜가 담겨 있다. 특히 주니어 심사역들은 더 많은 산업 전문가를 내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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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운 기자(jw@chosunbiz.com);김종용 기자(dee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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