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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횡설수설/이진영]남편을 ‘배 나온 오빠’라 했다 뭇매… 여기가 북한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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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어르신들은 못마땅해하지만 요즘 아내들이 남편을 부를 때 가장 많이 쓰는 호칭이 ‘오빠’다. 연애 시절부터 쓰던 말이 입에 붙은 것이다. 남편은 대부분 ‘○○야’ 하고 이름을 부른다고 한다. 서로를 ‘여보’라고 부르는 부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재혼하는 남성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호칭도 ‘오빠’다. 그런데 국민의힘 김혜란 대변인(48)이 소셜미디어에서 남편을 ‘오빠’라고 했다가 일부 당원들의 문자 폭탄과 대변인직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대통령 부부를 조롱했다는 주장이다.

▷‘오빠’ 논란의 발단은 지난달 결혼 20주년을 맞은 김 대변인이 최근 페이스북에 결혼식 가족사진과 함께 올린 게시글이다. “오빠, 20주년 선물로 선거운동 죽도록 시키고 실망시켜서 미안해…. (이때 오빠는 우리 집에서 20년째 뒹굴거리는 배 나온 오빠입니다)”. 춘천지법 원주지원 판사 출신인 김 대변인은 지난 4·10총선에서 국민의힘 강원 춘천-철원-화천-양구갑 후보로 나왔다가 떨어졌다.

▷그런데 이 게시물에 ‘그 오빠가 누구냐’고 따지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 씨가 김 여사에게 받았다고 공개한 카카오톡 문자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를 비꼰 것 아니냐는 의혹 제기였다. 결혼기념일이 한참 지난 시점에 ‘오빠’ 게시글을 올린 것도 의혹을 키웠다. ‘배 나온 오빠’는 대통령 부부에 대한 “명백히 의도적인 조롱” “피아 구분 못 하는 내부 총질”이라는 비난에 “피해망상일 뿐” “배 나온 오빠는 집집마다 있다” “영부인 아니면 오빠란 단어도 못 쓰나”라는 반박 글도 쇄도 중이다.

▷오빠 논란은 ‘친윤’과 ‘친한’의 대결로 흐르는 양상이다. 김 대변인은 황우여 비대위원장 시절 임명된 후 유임돼 친한으로 분류된다. 그는 “제 개인정보를 악의적으로 유출하고 집단적인 사이버 테러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며 “문명사회가 묵과할 수 없는 중대 범죄 행위”라고 했다. 그의 대변인직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 강명구 의원(47)은 대통령실 국정기획비서관, “엄중한 시기에 저런 글을 올리는 ‘국민의힘 대변인’의 부박함”이라 비판한 여명 보좌관(33·강승규 의원실)은 대통령실 정무수석 행정관 출신이다.

▷오빠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도 ‘oppa’로 올라 있는 단어다. 혈육 관계가 아닌 남자에게 ‘오빠’라 했다간 징역 2년형에 처하는 북한 말고 이 단어에 이토록 과잉 반응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원래 내부 싸움이 더 잔인한 법이라지만 집권당이 어쩌다 ‘오빠’ 소리에 둘로 쪼개져 문자 폭탄으로 치고받는 지경이 된 건가. 문제의 ‘오빠’에 대해 ‘친오빠는 논할 상대가 아니다’ ‘친오빠 맞다’며 온 국민을 농락하는 명 씨에겐 큰소리도 못 치면서 말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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