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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김현기 논설위원이 간다] “일본 젊은층, 한국어로 ‘대박’ ‘최고’ 쓰는 게 최고 핫한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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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민 전 주일대사가 털어놓은 격변의 한·일 관계 2년



중앙일보

지난 16일 인터뷰에 응한 윤덕민 전 주일대사는 “1980년대 초 유학생 때와 40년 지나 대사로 재임했던 때의 일본 사회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계속 잔잔하고 안전한 나라”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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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술 실력이 엄청나다고 기시다 전 총리에게 들었습니다. 제가 기시다와 직접 술 실력을 겨뤄본 적은 없지만 나도 꽤 강한 편인데”(이시바 일본 총리)

“아, 그래요. 기시다 전 총리는 사케를 좋아하고, 난 맥주를 좋아했는데, 하여간 언제 우리 둘도 한번 같이합시다.(웃음)”(윤 대통령)

지난 10일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라오스에서의 첫 대면에서 한·일 두 정상의 ‘케미’는 좋았다. 적당한 농담을 섞어가며 의기투합했다. 지난 1일 기시다의 뒤를 이어 취임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에 대한 한국 내 평가는 일단 좋은 편이다. 윤 정부 들어 급속도로 개선된 한·일 관계의 큰 틀도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본의 한국 G7 가입 반대 지지 변화 움직임에 놀라움

한·일 정상, 미 대선 직후 새 당선인 함께 찾는 건 어떨지

7광구는 판도라의 상자…한·일 정치적으로 신중 접근해야

대일 외교만 책임 묻는 건 문제, 그러니 최전방이 약해져

윤 정부 출범 후 첫 주일대사로 만 2년간 재임하며 이 변화의 현장을 직접 진두지휘한 윤덕민 전 대사를 만났다. 그는 일본 젊은이들의 변화부터 소개했다.

“요즘 일본 젊은 층에선 대화 중간에 ‘대~박’이라거나 ‘최고!’란 한국말을 넣는 게 유행이에요. 그래야 멋있다, 폼난다고 여긴답니다. 심지어 속어이긴 하지만 ‘졸라’라는 단어를 말끝마다 씁니다. 참, 대단한 변화죠.” 물론 한·일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방심은 금물이다. 특히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이 기회이자 고비다. 오는 27일 치러지는 총선거에서 자민당·공명당 연립 정권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 이시바 정부가 조기 소멸할 수도 있다. 지난 8월 귀임한 윤 전 대사에게 이시바 신임 총리의 생각, 한·일 관계의 나아갈 방향, 한국 대일외교의 문제점을 물었다. 라인 사태, 7광구 문제의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시바, “핵 무장 말고 핵 공유”

Q : 이시바 총리에 대한 인상은.

A : “네 번 만났다. 진지한 인물이다. 아마 요즘 일본 지도자급 정치인 중 가장 전향적 역사관을 갖고 있다고 본다. 한번은 내가 ‘나토가 핵 공유를 하듯 한·미·일이 동해 상에 공동으로 핵잠수함을 공유 관리하며 서울이나 도쿄가 공격을 받았을 때 공동으로 대처하면 어떨까’란 질문을 던지자 큰 관심을 갖고 호응하며 설명하더라. 그는 한·일이 독자 핵무장하기 보다는 중국 등 주변국에 주는 충격을 줄이면서 미국의 핵우산 신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관심이 컸다.”

Q : 한국 내에선 그에 반발하지 않을까.

A : “한때 우리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는 게 지혜인 양 생각했지만, 세상은 점점 그렇게 되고 있지 않다. 중국이 급부상하고 우크라이나에 북한군이 파병하는 세상이 됐다.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도 대선 후 고립주의 성향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 국가인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과연 우리에게 어떤 외교적 활로가 있을 수 있을까. 이시바가 얘기하는 아시아 판 나토 구상이나 핵 공유 구상이 당장 가능한 이슈는 아닐지 모르지만, 방향성으로 본다면 고민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Q : 이시바는 다음 달 5일 미 대선 직후 미국을 방문해 당선인과 만나겠다고 하는데.

A : “우리도 누가 당선되건 이른 시일 내에 만나는 게 좋다.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가 함께 미 당선인을 찾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제2의 캠프 데이비드’가 되지 않겠는가.”

수소·원자력 포괄 한·일 FTA 필요

Q : 내년이 국교정상화 60주년이다. 뭐가 성사됐으면 좋겠나.

A :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같은 선언이 상징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일 관계를 제도화하고 후퇴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60주년을 맞아 현행 G7에 한국·호주가 들어가는 G9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데 일본이 한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의 외교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G9 표준의 방향성이 설정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Q : 서방의 아시아 맹주를 자처하는 일본이 찬성할까.

A : “물론 부정적 흐름이 아직 있긴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야치 쇼타로 전 국가안전보장국장이 한 심포지엄 기조연설에서 ‘한국의 G7 가입을 일본이 지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고, 거기에 참석한 기시다 정부의 핵심 인사까지 같은 주장을 하는 걸 보고 놀랐다. 일본 내 전반적 흐름은 긍정적인 쪽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Q : 경제 분야에선.

A :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야 한다. 다자간 협정인 CPTP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면 같은 효과가 있다고도 이야기하지만, FTA로 보다 포괄적인 경제협정을 맺어야 한다. 그 안에 첨단기술 분야의 경제안보 관련 조항도 넣고, 수소나 원자력 분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Q : 7광구 공동개발 문제는.

A : “아직 큰 진전은 없다. 내년 6월이 7광구를 공동개발하기로 했던 협정을 계속 이어갈지 혹은 종료시킬지 상대국에 통보하기로 한 시한이다. 다만 협정 이후 국제해양법 변화로 7광구 관할권이 ‘중간선 기준’으로 바뀐 만큼 일본 입장에선 협정을 깨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법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이 있다. 무슨 말이냐면 일단 한·일·중 간에는 뚜렷하게 확정된 기준선이란 게 아직 없다. 또 우리가 7광구 협정에서 ‘대륙붕 연장선 기준’을 주장하면 7광구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중국과 접하는 서해가 문제가 된다. 왜냐면 우리가 중국에는 ‘중간선 기준’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일본에 내세우는 논리를 한·중 간에 대입시키면 우리가 서해를 대부분 잃고 마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시작하면 끝도 없는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다만 일본도 중국의 개입을 원치 않는 만큼 한·일 관계가 좋게만 유지된다면 굳이 협정을 종료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관계가 악화하면 파기 선언을 할 것으로 본다. 예전에 어업협정 때도 그랬다.”

원폭 위령비 한·일 공동 헌화 뭉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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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 총리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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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지난 2년 재임 중 가장 뭉클하고 인상에 남는 장면은.

A : “지난해 5월 윤 대통령이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을 때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 위령비에 한·일 두 정상이 함께 헌화한 장면이다. 당시 우리 쪽에서 일본 측에 ‘이런 걸 좀 일본 총리가 우리에게 해줬으면 한다’는 리스트를 작성했었는데, 돌이켜보니 쉽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현직 총리로 옛 서대문 형무소(현 서대문 독립공원)를 찾았고, 2010년에는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매우 구체적 사과를 담은 간 나오토 총리의 ‘간 담화’가 나왔지만, 우리 국민이 그런 건 별로 기억을 못 한다. 진정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서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우리도 좀 열린 마음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Q : 한국이 일본에 불만이 있듯, 일본은 한국에 불안을 느끼는데.

A : “위안부 합의 번복, 강제징용자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은 믿을 수 없는 나라’란 프레임이 일본 내에 생겼고 일반 국민에게도 상당히 스며들었다. 일본은 우리와 달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극복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이다.”

Q : 재임 중 있었던 라인 문제의 진실은.

A : “우선 데이터 안전에 대한 인식에서 일본과 한국에 차이가 있다. 한국 내에서 이걸 마치 일본이 우리 역사뿐 아니라 기업도 강탈하려 한다는 프레임으로 만든 건 아쉽다. 다만 라인 사태를 계기로 경제안보 이슈에 우리의 대비 태세, 시스템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일본의 경우 어떤 기업이 문제를 일으키면 바로 그 기업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90도로 절하고 사과하는 문화가 있다. 네이버는 그 역할을 소프트뱅크가 해주길 원했던 것 같다. 근데 그렇지 않다 보니 일본 내 여론이 들끓었고, 그 결과 이런 결과로 연결된 것 같다.”

Q : 그래도 일 총무성이 지분 조정을 거론한 건 지나치지 않았나.

A : “우리도 일 정부에 그 점을 계속 물었다. 총무성 담당자의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그건 내가 실수했다’고 하더라.”

우리 외교 최전선은 도쿄인데

Q : 우리 대일 외교의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A : “이런 비유를 해본다. 북한과 러시아가 군사동맹을 부활한 건 우리 국민 안전에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그런데 그것에 책임을 지라고 하는 사람도,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대일 외교는 조그마한 일에도 책임지라고 하고, 또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대일 외교 담당자들이 위축되고 지원도 안 한다. 난 우리 외교의 최전선은 도쿄와 베이징이라 생각한다. 요즘 국정감사를 봐도 외교 문제의 60% 이상이 대일 외교 관련 아니냐. 최전방에 보내야 할 좋은 인재들을 후방에 많이 갖다 놓으니 최전방이 약해진다. 최전방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Q : 재임 중 ‘라면집 도장 깨기’가 화제였는데.

A : “취임 전 주일 미국 대사가 열차 타는 장면을 SNS로 내보내며 공공외교를 하길래 난 라면집으로 했다. 유학 시절 단골집 ‘라멘 지로’로 시작했는데 댓글이 무려 1000개가 넘게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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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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