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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지역의사제’ 54년 日, 섬마을 의료도 살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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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해법, 해외서 길을 묻다]

의대 6년 학비 등 지원받고 9년 근무

“정원 소폭 늘려 지역의료 강화 효과”

“지역의사제로 입학한 의대생 대부분은 9년간 지역 의료에 종사하고 일부는 그 후에도 남습니다.”

15일 일본 나가사키현 후쿠에섬 고토중앙병원. 이 병원의 마에다 다카히로 낙도의료연구소장은 “연구 결과 지역의사제가 지방 의료 살리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일본에서 가장 섬이 많은 나가사키현은 1970년 지역의사제를 도입해 의대 6년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대신 일정 기간 낙도 등에서 일하게 했다.

일본 정부는 제도의 효과가 검증됐다고 보고 2008년 의대 정원을 점진적으로 늘리는 동시에 전국에 지역의사제를 확대 적용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정원 9384명 중 18.9%가 지역의사제에 할당됐다.

한국에서도 지역의사제 도입 논의가 있었지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의료계 반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올 초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위헌성이 없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지역의사제보다 느슨한 ‘계약형 필수의사제’로 선회했다.

일본 의료 전문가들은 “의대 증원만으론 지역 의료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며 정원을 소폭 늘리며 지역의사제를 병행해 지역 의료를 살린 일본 사례를 한국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日, 의대 19% 지역의사제 선발… 6년 학비 받고 9년 의무 근무

〈2〉 지방의료 살리는 日 의대교육
입학금 등 6년간 8700만원 지원… 섬 실습으로 지역의료 관심도 높여
“기간 못채우는 비율 10%도 안돼”… 韓 ‘계약형 필수의사제’ 효과 미지수


동아일보

일본 나가사키대 의대생들이 낙도 의료시설을 찾아 실습하는 모습. 일본에서 가장 섬이 많은 나가사키현은 1970년 일본 최초로 지역의사제를 도입했고 모든 학생이 1주일 동안 섬에 머물며 실습하도록 하고 있다. 나가사키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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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사제가 없었다면 외딴섬 주민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7일 일본 나가사키현청에서 만난 무라사토 료 의료인력대책실 주임주사는 “지역의사제로 입학한 학생 중 의무 근무 기간 9년을 못 채우는 비율은 10%미만”이라며 이렇게 강조했다. 나가사키현은 수도인 도쿄에서 1000km가량 서쪽으로 떨어져 있다. 지역 의대는 나가사키대밖에 없는데 관내 섬은 971개에 달하다 보니 매년 배출되는 의대 졸업생 120명을 최대한 지역에 남기는 것이 과제였다.

● “별도 정원으로 선발해 경쟁률 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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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사키현은 ‘낙도 주민을 돌볼 의사를 확보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장학금 형태로 1970년 지역의사제를 처음 도입해 현재까지 운영 중이다.

지역의사제로 입학한 의대생에겐 입학금과 학비 전액, 도서 구입비, 생활비 등 6년간 약 8700만 원을 지원한다. 대신 의사 면허 취득 후 9년 동안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의료취약지에서 근무해야 한다. 무라사토 주사는 “의사들이 의무 근무 기간을 못 채우고 그만두면 지원금 원금에 이자까지 더해 반환해야 하는데 이자율 14.5%가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현지에서 만난 의사들은 지역의사제로 의사 수급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효과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나가사키시에서 고속선으로 1시간 반 걸리는 후쿠에섬의 고토중앙병원에서 일하는 내과 전문의 노나카 후미아키 씨는 “후배 의사들을 보면 학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 게 큰 메리트”라며 “지원받은 돈을 다 반환하면서 도시 의료기관으로 근무지를 옮기고 싶어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또 “지역의사제 시행 후 섬에서 근무하는 의사 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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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생노동성은 나가사키현 사례를 주목하고 2008년 의대 증원과 동시에 지역의사제 전국 확대 시행을 결정했다. 의대 인원을 2008년 7793명에서 2024년 9384명으로 20%가량 늘리는 동안 지역의사제 정원은 418명에서 1770명으로 4배 이상이 됐다. 전체 정원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5.4%에서 18.9%로 늘었다.

별도 정원으로 뽑다 보니 지역의사제로 입학할 때 경쟁률은 다른 전형보다 낮은 편이다. 마에다 다카히로 나가사키대 의대 종합진료과 교수는 “나가사키대 의대의 경우 올해 일반전형 경쟁률이 7.7 대 1이었는데 지역의사제 전형은 2.2 대 1이었다”고 했다. 일본의사협회의 이마무라 히데히토 상임이사는 “의대 입학이 어렵다 보니 의사가 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지역의사제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 국내서도 유사 제도 도입, 효과는 미지수

과거 국내에서도 일본의 지역의사제를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헌법상 보장된 직업 선택의 자유와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의료계의 반발에 부닥쳤다.

이 같은 논란은 일본에서도 있었다. 가타미네 시게루 나가사키대 의대 명예교수는 “일본에서도 대학에 막 입학한 신입생에게 졸업 후 근무지를 미리 선택하는 건 이르다는 의견이 있었다”면서도 “정부와 의료계가 논의한 끝에 도시와 지방의 의료 격차 문제가 너무 심각해 지역의사제 도입의 필요성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 대신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계약형 필수의사제’를 도입할 방침이다. 지역 의료기관 근무를 약속한 8개 필수과 전문의 96명을 대상으로 월 400만 원의 지역근무수당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별도 정원을 할당해 선발하고 의무적으로 지역에서 근무하게 하는 일본보다 다소 느슨한 방식이다.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해 “의무나 강제 대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지방 공공병원의 경우 연봉을 5억 원까지 올려도 의사 구인난을 겪는 상황에서 인센티브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또 다소 강제성이 있더라도 일본처럼 확실하게 지방 의료를 살리는 제도를 함께 도입했다면 증원 규모를 낮출 수 있어 의료계 반발이 지금처럼 크진 않았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 낙도 실습 등으로 지역 의료 관심 유도

동아일보 기자가 후쿠에섬을 찾은 15일 나가사키대 의대생 일부도 섬을 찾았다. 나가사키대는 의대생 전원에 대해 5학년 때 1주일 동안 섬에 머물며 낙도 실습을 하도록 하고 있다. 졸업반인 6학년은 희망할 경우 한 달 동안 섬에 머물며 병원에서 실습할 수도 있다. 지역 의료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차원이다. 지자체는 대학과 손잡고 후쿠에섬에 낙도의료연구소도 만들었다.

노나카 씨는 “저도 대도시(후쿠오카시) 출신이지만 18년 전 낙도 실습을 하면서 지역 의료에 관심을 갖고 지금도 섬에 남아 있다”며 “지방이다 보니 연봉도 더 높다. 그리고 의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낙도 의료를 경험해 보면 생각보다 만족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나가사키=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김소영 박경민 여근호(이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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