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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기고]약사 핑계로 미루는 복지부, 안전상비약 제도 12년 방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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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동안 엄마들이 모인 자리라면 어디에서든 '밤 사이 아이가 열 나면 큰 일' 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추석부터 10월 초 징검다리 연휴까지 있다 보니 작금의 의료 대란과 응급실 뺑뺑이 논란에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지사. 더욱이 약국은 밤이면 문을 닫고, 편의점 상비약으로 살 수 있는 해열제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각해 보면 이런 상황이 비단 근래에만 국한된 일이었나 싶다.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1년 365일 밤 사이 일어난 응급상황에서 상비약을 구하지 못하거나 응급실을 전전하며 곤란에 처한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다.

필자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편의점 안전상비약 제도가 도입 10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제도 관리를 소홀히 하는 것을 간과할 수 없어 지난해 발족했다. 약사법 및 약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편의점 안전상비약은 20개 품목 이내의 범위에서 지정할 수 있으며, 3년마다 지정 품목의 재검토를 해야 한다. 하지만 법 시행 초기 13개로 제한된 품목 지정도 모자라 제도 시행 12년이 경과한 지금까지도 품목 확대를 위한 재검토에 따른 조치가 단 한 차례도 진행되지 않은 것은 복지부의 업무 태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기존의 13개 품목 중 해열제가 4종에 이르는데 그 중 2종은 국내 생산이 중단된 제품인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11개 품목만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해열제는 밤 사이 병원, 약국에 갈 수 없는 국민이 편의점에서 가장 빈번하게 찾는 상비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복지부의 어떠한 조치도 없이 생산 중단된 지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복지부가 편의점 안전상비약의 품목 확대를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제도 도입 후 3년이 경과한 시점에 정부 차원의 대국민 설문조사와 연구 용역이 이뤄져 지사제, 화상연고, 제산제 등의 품목 확대가 필요하다는 중론이 모아졌다. 이를 바탕으로 2017년 안전상비약 품목지정심의위원회가 힘들게 열렸지만, 약사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아무 결실을 맺지 못하고 논의가 중단됐다. 당시 현장에 있던 대표 시민단체로서 복지부가 아직도 약사회 눈치를 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이유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국민은 보다 적극적으로 자기건강관리를 추구하며 안전상비의약품 제도의 효용가치가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또 해열진통제의 품목 추가와 복용 편의를 개선한 감기약, 다양한 제형의 소화제, 파스 등의 품목들이 확대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복지부는 국민의 민원에 번번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답변만 반복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은 소비자인 국민의 목소리에 화답하는 것이다. 혹시 복지부가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가 아니라 약사회의 허락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영업안전상비약 제도는 이미 국민 대다수가 인지하고 그 편익을 누리고 있는 '웰메이드 보건정책'으로 자리잡았다. 이제라도 복지부는 국민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안전상비약을 이용할 수 있도록 품목 확대를 위한 신속히 논의를 재개하고, 법률 규정에 따른 품목 재검토를 다시 한 번 촉구한다.

머니투데이

김연화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 위원장(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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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화 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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