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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정권마다 내놓는 ‘관제 펀드’, 짠물 ‘배당’…시장은 단타만 횡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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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K증시…7대 고질병 [스페셜리포트]


6. 연속성 떨어지는 관제 정책

정권 바뀔 때마다 방향성 바뀌어 혼란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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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 없는 관제 정책은 국내 증시 불신 바이러스다. 역대 정부마다 다양한 관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 방향성이 바뀌며 이전 관제 정책 효과가 줄어드는 현상이 반복된다. 결국 단기적인 처방과 홍보에만 급급하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관제펀드가 대표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의 정책 기조를 반영한 금융상품이 등장했다. 노무현정부의 선박펀드, 이명박정부의 유전펀드, 박근혜정부의 통일펀드, 문재인정부의 뉴딜펀드 등이다. 그러나 해당 펀드 수익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2020~2021년 등장한 뉴딜펀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인 상품이 수두룩하다. ‘TIGER 탄소효율그린뉴딜’ ‘KODEX 탄소효율그린뉴딜’ ‘HANARO 탄소효율그린뉴딜’ ‘KBSTAR Fn K-뉴딜디지털플러스’ 등이 상장 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 중이다. 2014년 박근혜정부 시절 등장한 통일펀드 1호인 ‘신영마라톤통일코리아증권자투자신탁(주식)A형’은 최근 3년간 8% 넘게 떨어졌다. 또 다른 대표적인 통일펀드 ‘브이아이코리아통일르네상스증권자투자신탁(주식)A’ 역시 최근 3년간 17% 내렸다.

이명박정부 때 활성화된 유전펀드도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육상 유전에 투자하는 ‘패러렐펀드’는 공모 당시 4000억원 모집에 청약금만 9416억원이 몰릴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패러렐 유전 추정 매장량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투자자의 대규모 손실로 이어졌다. 노무현정부 시절 우후죽순 생겨난 선박펀드도 흑역사로 꼽힌다. 2002년 선박 투자 회사 도입 후 활성화된 선박펀드는 투자금으로 선박을 사서 해운사에 빌려준 뒤 용선료(임대료)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그런데 2010년대 들어 해운 업황 부진이 이어지고 절세 혜택도 축소되며 투자자 관심에서 멀어졌다. 선박 투자 회사가 대규모 순손실을 내며 상장폐지됐고, 증권사가 판매한 선박펀드는 수백억원대 손실을 봤다.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대한 우려도 팽배하다. 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정부와 금융당국이 야심 차게 마련했지만 시장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저평가된 고배당 종목이 빠지고 주주환원에 인색했던 기업이 다수 편입돼서다. 지수 편입이 당연시되던 일부 금융주가 제외되며 종목 선정 기준에 대해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고태봉 iM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벤치마킹 대상인 일본 밸류업 정책이 효과를 볼 수 있었던 요인은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한 결과”라며 “법인세 혜택 등 기업의 유보자금이 커질 수 있도록 당근을 함께 제시한 부분이 우리나라와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기업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공감대를 얻기 전 일방적으로 추진한 정책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종목도 시장에서 의아할 정도로 기준이 모호하고 업종별 균형에 치우쳤다는 인식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관제 정책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근본적으로 정부가 경제 발전에 있어 증시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밸류업 지수에서 알 수 있듯이 투자자 눈높이와 저평가된 국내 증시를 정상화할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7. 짠물 배당 줄었다지만…

애플은 低성장 때 적극 주주환원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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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13~2022년 10년간 한국의 평균 주주환원율이다(KB증권 자료). 주주환원율이란 기업이 배당과 자사주 매입에 쓴 돈을 순이익을 나눈 비율이다. 예를 들어 순이익이 100억원이면 31억원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사용한다. 이는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꽤 낮은 수치다.

미국은 한국의 3배인 92%,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은 68%다. 신흥국(38%)과 중국(32%)조차 우리보다 높다.

낮은 주주환원율의 절반은 배당 부족이 이유다. 우리나라는 배당 성향(당기순이익 중 현금으로 지급된 배당금 비율)이 전반적으로 낮다.

금융위원회 등이 지난 2022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배당 성향은 19.14%다. 대만(54.85%), 영국(48.23%), 독일(41.14%), 프랑스(39.17%), 미국(37.27%) 등과 대조된다. 30%대 초반의 주주환원율은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주주 몫으로 돌려주는 데 인색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배당 성향이 낮으니 우리나라 상장 기업을 장기적으로 보유할 유인책이 사라진다. 대신 ‘단타’가 성행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국내 증시 시가총액 회전율(시가총액 대비 거래 비율)은 2019년 0.36에서 2020년 0.8까지 올랐다. 2021년 0.71, 2022년 0.45, 2023년 0.48로 종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큰돈을 굴리는 외국인 투자자 역시 국내 주식 시장에서 단타를 치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형국이다.

전문가들도 한국 증시가 저평가에서 벗어나려면 주주환원율 상승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KB증권 등에 따르면, 현재 국내 상장사 ROE(자기자본이익률)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총 주주환원율은 76%다. 국내 상장사들이 40%포인트 이상 주주환원율을 끌어올려야 전체적인 수익성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는 의미다.

ROE 수준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자사주 매입으로 시장 유통 주식 수를 감소시켜 주당순이익(EPS)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자사주 매입은 주주환원을 위한 기업 적극성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평가받기에 투자 심리도 개선할 수 있다.

애플의 주주환원 사례는 곱씹어볼 만하다. 애플은 지난해 매출 성장률이 3% 줄어드는 등 성장 둔화가 확실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ROE는 139%로 높은 수준을 유지한다. 자사주 매입으로 유통 주식을 줄여 EPS를 높이기 때문이다.

김세환 KB증권 애널리스트는 “성장이 감소하는 시점에 자사주 매입을 확대해 이익의 하방경직성을 높이고 R&D에 집중해 영업이익 성장과 주주환원을 동시에 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짠물 배당을 막기 위해 배당소득세 완화 주장도 나온다. 한국은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을 합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만 세율이 15.4%다. 2000만원을 초과하면 근로소득, 연금소득 등 다른 종합소득과 합해 누진세율(6.6~49.5%·지방세 포함)이 적용된다.

반면 미국은 1년 보유 시 15% 분리과세, 중국과 베트남은 10%를 부과한다. 홍콩은 배당소득세율이 0%다. 이 때문에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권가에서는 끊임없이 나온다.

다만 현행 세제로는 기업이 배당을 늘릴 유인이 적다. 대주주 세금이 특히 무거운데, 대주주가 이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우리나라 기업에선 배당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주주환원에서 배당과 같은 효과를 내는 자사주 매입은 자본 이득으로 환원돼 세금을 더 내지 않아도 돼 배당을 택할 이유가 더 줄어든다. 같은 주주환원에 대해선 동일한 방식으로 과세를 적용해 형평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명순영·배준희·문지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0호 (2024.10.16~2024.10.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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