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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호주 원주민 의원, 찰스 3세에 “영국이 학살...우리 왕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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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살해... 땅 돌려 달라"
원주민 말살 정책 사과 요구
소리 질러 강제 퇴장 당해

한국일보

찰스 3세(왼쪽) 영국 국왕이 21일 호주 캔버라 페어베언 공군기지에 도착해 아서 스파이루 호주 외교통상부 의전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찰스 3세가 즉위 이후 호주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캔버라=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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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 출신 상원 의원이 찰스 3세 영국 국왕 면전에서 “당신은 내 왕이 아니다”라며 “우리 땅을 돌려달라”고 항의했다. 영연방 국가인 호주는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다. 찰스 3세가 2022년 국왕에 취임한 후 호주를 방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리디아 소프 무소속 의원은 찰스 3세가 이날 캔버라에 있는 호주 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자 그 앞에서 “당신이 우리 사람들에 대한 학살을 저질렀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우리에게서 훔쳐간 우리의 뼈, 아기, 사람들을 내놓으라”라며 “당신이 우리 땅을 파괴했다. 우리는 조약을 원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주변에 있던 경호원들은 찰스 3세에게 다가가려는 소프 의원을 제지한 뒤 행사장에서 퇴장시켰다. 찰스 3세는 이 광경을 무표정하게 지켜보다가 카밀라 왕비와 행사장을 떠났다. 소프 의원은 앞서 영국 국가가 연주될 때도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한국일보

원주민 출신인 리디아 소프(왼쪽) 호주 상원의원이 21일 캔버라 국회의사당에서 찰스 3세 영국 국왕을 향해 이곳은 당신의 땅이 아니고, 당신은 우리의 왕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캔버라=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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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원주민들이 영국에 대한 반감이 큰 건 1788년 영국계 이주민들이 호주를 건국할 당시에 폈던 ‘원주민 말살정책’ 때문이다. 호주 헌법이 “영국이 주인 없는 땅에 국가를 세웠다”는 논리에 기반해 만들어진 탓에 그 이전부터 호주 대륙에 살았던 원주민들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문명화 명목으로 원주민 아이들을 강제로 부모와 분리해 백인 가정에 보냈고 이들에게 원주민 언어가 아닌 영어를 가르치면서 정체성을 박탈하려 했다. 원주민에게 투표권이 부여된 것도 1967년에 이르러서였다. 소프 의원은 호주 정부와 원주민 간 조약으로 영국의 원주민 말살 정책과 관련한 폭력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호주 내에서 군주제 반대 움직임이 부상할지도 관심사다. 호주는 군주제에 대한 반감이 큰 영연방 국가로 1999년 공화제 전환 개헌을 놓고 국민투표까지 했다. 다만 과반인 54.9%가 공화제로의 전환을 반대해 부결됐다. 그러나 구심점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서거하고 ‘인기 없는’ 찰스 3세가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영연방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변수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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