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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2 (화)

전쟁도 피했는데 허리케인에 참변... 우크라 가족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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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남편 드미트로 세겐(왼쪽부터), 아들 예브헤니, 아내 아나스타샤.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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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미국으로 피난온 일가족이 허리케인 헬린에 휩쓸려 사망하는 비극을 맞았다.

21일(현지시각) 미 피플지에 따르면,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번즈빌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 출신 네 가족이 지난달 27일 허리케인 헬린에 휩쓸려 실종됐다. 실종된 이는 남편 드미트로 세겐, 아내 아나스타샤, 13살 아들 예브헤니, 아나스타샤의 어머니인 테티아나 노비트니아였다. 이들은 3개의 침실이 딸린 임시 트레일러에 거주 중이었다고 한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근처에 살던 친척이 이들을 구하러 갔지만, 이들은 이미 실종된 상태였다. 아나스타샤의 형부인 라이언 비베는 “사고 현장에는 물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치 바다를 보는 것 같았다”고 허탈해했다.

세겐 부부의 시신은 지난 14일에 발견됐지만, 아들과 할머니는 여전히 실종 상태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베는 “수색대는 이들이 어딘가에 묻혀있을 거라고 하더라”며 “진흙과 잔해에 너무 깊이 묻혀 있어서 수색견조차 그들을 찾을 수 없다. 그들이 발견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일가족에게 찾아온 비극이 더욱 슬픈 점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지난 2022년 6월 미국으로 이주해온 피난민이라는 사실이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번스빌에 살고 있던 비베 부부를 따라 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이들은 허리케인 예보를 접했지만 전쟁보다 참혹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비베는 “그들은 이미 더 나쁜 상황을 견뎌냈지 않나”라며 “우크라이나에서 매일 미사일과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고 몇 달 동안 밤낮으로 테러가 난무하는 전쟁터에 있었다”고 했다. 이어 “‘비바람이 부는 게 뭐가 대수겠느냐. 전쟁도 견뎌내는데’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허리케인의 위력은 그들의 예상 밖이었다. 당일 이른 아침부터 강물은 계속 차올랐고 강풍에 나무가 휘날렸다. 집 근처의 강이 범람해 지하실로 밀려 들어왔고 전기가 끊기고 휴대전화마저 신호를 잃었다. 비베는 “그 순간부터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고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허리케인이 잠잠해지자 비베의 가족은 세겐 가족을 찾아 나섰지만, 세겐 가족은 이미 홍수에 휩쓸려간 뒤였다.

실종된 노비트니아는 흑색종으로 투병 중이었다. 이미 흑색종이 뇌와 몸 전체로 퍼져 최근에는 치료마저 중단했다고 한다. 노비트니아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 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쌍둥이 자매 옆에 묻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비베는 “노비트니아는 처음부터 우크라이나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며 “그녀는 여전히 돌아가고 싶어했지만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 드미트로는 이주 후 건설업 일자리를 얻었고, 아나스타샤는 가족을 위해 요리하고 주말에는 중고품을 사러 다니고 미래를 위해 돈을 저축하는 평범한 주부였다. 아들 예브헤니는 물건을 분해해서 수리하거나 3D 프린터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을 좋아하며 뉴욕에서 사는 것을 꿈꿨다고 한다. 비베는 예브헤니를 두고 “정말 똑똑하고 계획이 분명했던 아이”라고 회상했다.

비베의 가족은 살아남았지만, 이들 역시 허리케인의 피해자다. 집 1층 천장까지 물이 차올라 벽이 무너졌고, ‘고펀드미(GoFundme)’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은 실종된 노비트니아를 고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그가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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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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