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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만물상] 정치와 점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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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이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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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IT 전문 잡지 ‘와이어드’는 지난 8월 점성술사들이 미국 대선을 이용해 추종자를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이미 트립이란 점성술사는 2020년 X(옛 트위터)에 “토성이 귀환하기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가 2024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글을 썼다가 해리스가 출마하면서 유명해졌다. 다만 그는 “트럼프가 다음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이런 온라인 정치 점성술사들에 대해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정치적 예언을 해서 유명해진 뒤 고액의 개인 상담을 하는 “수익성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점술과 주술은 고대부터 정치와 연관이 깊었다. 중국 고대의 상(商) 왕조는 소뼈나 거북 딱지를 불태워 나오는 균열을 보고 국사에 대한 점을 쳤다. 이때 점술사인 정인(貞人)이 점의 내용을 기록한 것이 중국 한자의 시초인 갑골문이다. 그리스·로마 정치가들은 무녀의 신탁을 받았고,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점성술을 중시했다. 신미양요, 병인양요 때 조선 왕실은 무녀의 말에 따라 궁궐 뒷마당에 솥단지를 묻었다고 한다.

▶현대에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낸시가 점성술사 조앤 퀴글리에게 의존했고,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점성술사 엘리자베스 티시에에게 자문했다. 1981년 인도의 한 점성술사가 일간지에 ‘인디라 간디 총리가 이번 달 암살당할 것’이란 예언을 해서 경찰이 그를 연행하는 소동이 일었다. 간디 총리는 그 3년 후 암살당했다. 운인지 신기인지 신통력을 발휘한 정치 점술가도 많았다. 일본 정치 평론가가 쓴 책에 자민당 내 한 파벌을 돕던 예언가가 다음 총재 선거 결과를 득표수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혔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에서도 선거 때마다 ‘누가 된다’ ‘누구는 안 된다’고 예언하는 점술가들이 등장해 소문을 탄다. 각 캠프가 이 점술가들을 관리한다는 얘기도 있다. 이들이 대중에게 영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한 정치인이 ‘오늘은 어느 방향으로 나가지 말라’는 점술가 말을 따라 대문을 피해 사다리로 담을 넘어 출근했다는 얘기도 있다. 한국 공무원들이 점을 많이 본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승진과 보직에 목을 매기 때문이다.

▶21일 국회 법사위에서 명태균씨와 관계가 있는 강혜경씨가 출석해 김건희 여사가 명씨의 “예지력”에 의존했다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 대통령 내외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시신이 안치된 곳에 조문하지 않았던 것 등이 명씨의 조언이란 얘기다. 2021년 대선 경선 때 ‘손바닥 왕(王) 자’부터 시작된 주술 논란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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