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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안호기 칼럼]파멸 앞당기는 초가속 시대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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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말시계’가 인류의 멸종 또는 파멸 징후를 경고하고 있다. 핵전쟁 위험을 예고한 종말시계(Doomsday Clock)는 올해 초 기준 자정까지 90초를 남겨두고 있다. 1947년 이 시계가 설치된 이후 종말에 가장 가까워졌다. 탄소시계(Climate Clock)는 산업혁명 이후 지구 평균온도의 상승 한계치를 1.5도로 정하고 있다. 1.5도를 넘기면 극심한 폭염과 가뭄, 폭우, 물과 식량 부족 등 심각한 위협이 닥친다. 지금까지 1.2~1.3도 상승했다. 22일 오후 기준으로 탄소시계 한계치는 4년273일 남았을 뿐이다.

인공지능(AI)의 위험을 경고하는 ‘AI 안전시계(Safety Clock)’가 등장했다. 마이클 웨이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교수는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을 통해 AI 안전시계가 현재 11시31분이라고 밝혔다. 시계는 AI의 위험을 저·중·고·치명적 등 4단계로 구분했다. 현재 시각 11시31분은 고위험에 막 진입했다는 뜻이다.

웨이드 교수는 AI가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AI는 빛의 속도로 발전하는 반면, 규제는 뒤처져 있다”면서 글로벌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 실제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는 AI 드론이 인명 대량살상에 나서고 있다. 일부 전문가는 AI 무기체계의 등장에 대해 원자폭탄 발명과 비슷한 수준의 위협이라고 평가한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책 <넥서스>에서 “우리는 AI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데 여념이 없는데, 이런 기술들은 통제를 벗어나 우리를 노예로 만들거나 전멸시킬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지난 10만년 동안 인간은 힘을 오용해 발견과 발명, 정복 등의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인류는 생태적 붕괴 직전의 실존적 위기에 놓였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AI의 대부’ 제프리 힌턴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지적 능력 면에서 AI가 인간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며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는 위협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5200만여개의 한자로 이뤄진 팔만대장경은 만드는 데 15년이 걸렸다. 한자에 능숙한 사람이 완독하려면 하루 8시간씩 읽더라도 30년이 걸린다고 한다. 챗GPT에 팔만대장경을 읽고 요약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물었다. 초당 1000자를 처리한다고 가정할 때 14.4시간 소요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46억년 지구 역사에서 인간이 지배종이 된 것은 10만년 전부터였다. 18세기 말 산업혁명은 지구를 인류세(Anthropocene)에 접어들게 한 중대 사건이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고 뽐내기 시작한 기간은 지구 역사의 0.002%뿐이다. 그리고 0.000005%라는 짧은 기간에 화석연료 사용과 기후변화로 지구에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하고 있다.

AI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지구와 인류를 변화시키고 있다. 대가속(Great Acceleration)을 넘어 초가속(Hyper Acceleration) 시대에 이미 접어들었다.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거대한 가속>에서 “아침에는 유치원에 처음 등원하는 아들과 헤어지면서 뽀뽀를 해줬는데, 오후에는 그 아들이 5학년이 되어 집에 돌아오는 식이다”라고 썼다. 시간이 갈수록 빠르게 흐른다는 뜻이다.

서구는 산업혁명 이후 300년,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100년 동안 근대화를 진행했다. 한국은 1960년대부터 불과 30년 만에 다른 나라들을 따라잡았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압축성장’이다. 고성장 과실이 적지 않지만, 급격한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더 크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스트레스가 만연하고, 디지털 격차는 사회 불평등을 초래한다. 정치 불안정이 심해지고, 환경 피해는 갈수록 커진다.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현상이다. 조만간 AI 기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가 도래한다. 이는 별 볼 일 없는 존재로 인간을 전락시켜 정체성 혼란마저 일으킬 것이다.

AI 안전시계의 등장은 종말로 치닫는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지속 가능한 지구와 인류의 미래를 위해 속도를 늦추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근대화 이전 과거 삶의 방식을 되찾고, 지구와 인간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국가는 성장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생산량이 풍부해지면 국민이 행복해진다는 가정은 맞지 않는다. 시민이 서로 돌보고 연대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변화의 속도가 훨씬 느리더라도 공동체의 가치와 삶의 질을 높여야 행복해질 수 있다.

경향신문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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