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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송혁기의 책상물림]문해력 붕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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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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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마다 ‘요즘 아이들’의 우리말 실력이 문제라는 성토가 이어진다. ‘혼숙’, ‘두발’, ‘시발점’, ‘우천시’…. 자극적인 사례들을 거론하며 문해력 저하를 질타하는 글들이 올해도 지면을 채웠다. 기초학력 미달을 우려하고 독서 교육 강화를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한자 교육이 부실해서 그렇다는 지적도 다시 제기되었다.

우리말 어휘의 상당 부분이 한자어니 우리말의 올바른 구사를 위한 한자 교육은 당연히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휘력은 문해력의 일부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는 모르는 어휘를 간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방대한 사전을 늘 손에 쥐고 다니고 있지 않은가. 문해력의 핵심은 어휘력을 기본으로 글 전체를 바르게 이해하고 온당하게 추론하는 역량이고, 글 이면의 맥락과 의도를 깊이 파악하는 소양이며, 글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볼 줄 아는 안목이다. 나아가 나와 생각이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마저 다른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이해의 영역을 넓혀 가고자 애쓰는 겸허하고 열린 마음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기초도 안 되어 있다며 나무라고, 아이들은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어른들에게 입을 닫고 마음마저 닫는다. 세대의 문제만이 아니다. 성별과 지역, 해 온 일과 지적인 경험의 차이 등도 언어와 생각을 다르게 만든다. 하지만 모국어인 우리말로 쓴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고 자신하기 때문에 다른 해석의 가능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자기 확신에 찰수록 다른 생각, 다른 언어는 틀린 것일 수밖에 없게 되니, 문해력 부족은 늘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이전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들에 노출되어 있다. 언제부터 어떻게 주어졌는지 모를 알고리즘이 선택해 준 정보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전부인 양 고착되어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소통할 의지도, 여지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면, 이야말로 문해력의 붕괴라고 할 만하다. 스웨덴 대사관 앞에 몰려가 한강 작가의 노벨상 시상을 규탄하는 분들의 저 확신에 찬 구호에서 그 처참한 단면을 본다. 혹 나에게도 그런 단초가 있는 건 아닌지 무겁게 돌아보며.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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