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3 (수)

JMS 고발한 PD "그들 아닌 내가 성범죄자? 공권력에 지쳤다" [안혜리의 인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나는 신이다' 조성현 PD 인터뷰



중앙일보

지난 18일 다시 만난 조성현 PD. 검찰에서 5시간 조사받은 다음날이었다. 그는 "사이비 종교 추적하느라 30kg 찌고 공황장애를 얻었는데, 이젠 수사당국으로부터 범죄자 취급 받는 현실에 화가 난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가 정말 범죄자인가. 마음을 굳게 먹고 일하다가도, 대한민국 공권력 때문에 지치고 짜증 나서 정말 더 이상 이 일을 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됐을 때(아무도 사이비 종교 피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까. "

정명석 JMS 교주의 여성 신도 성폭행 의혹 등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의 조성현(45) PD가 5시간여의 검찰 조사 다음 날인 지난 18일 울분에 차 내뱉은 말이다.



JMS 등 추적 후 이어진 위협·고소

내부 비호 세력 수사 않는 경찰

공익엔 무신경한 검·경에 절망

지옥 견디는 피해자 누가 살피나

그는 해당 다큐에서 'JMS 측이 해외 도피 중이던 정 교주에게 보내기 위해 촬영한 여성 신도들 나체 동영상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방영했다'는 이유로 성폭력특별법 14조 위반 혐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로 고발당했다. 성 착취 동영상을 만든 N번방 주범 조주빈과 같은 혐의다.

앞서 지난 6월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그를 조사한 담당 경찰은 기자들에게 "(영상 속 여성들의) 침해받은 사익이 (다큐 방영으로) 이루어진 공익보다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가장 속상했다"고 했다. "고소인 중 정명석 최측근이 포함돼 있던데, 경찰은 (JMS 측 사주를 받아) 고소 고발을 남발하는 이 사람을 이미 피해자로 규정지었더라. 좋은 집에서 편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사이비 종교에 빠져 인생을 저당 잡힌 사람과 그 가족의 삶은 지옥인데, 그들의 피해가 얼마나 큰지 알고 이런 안이한 판단을 하는 건가. "

화는 났지만, 과거 그랬듯 무혐의 처리될 거라 믿고 내년 7월 방영할 '나는 신이다' 시즌 2 후반 작업 등에 열중했다. 그런데 지난 광복절 날 "기소 의견 송치" 문자를 받았다.

중앙일보

'나는 신이다' 공개 후 JMS 탈퇴 신도 모임이 준 감사패. 대통령상보다 더 소중하다. [사진 조성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는 성범죄를 둘러싼 검·경의 기계적 판단, 그리고 JMS가 수사당국에 심어둔 부역자들이 모종을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지난 9월 12일, 그리고 지난 18일 총 4시간여 동안 들은 인생 이야기를 그의 입장에서 정리했다. 뒤늦게 본인이 사이비 종교 피해 가족이라는 걸 알게 되고, 사이비 종교를 비호하는 세력에 맞서는 그의 삶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안혜리 논설위원



범죄자의 사익 vs 고발자의 공익



사이비 종교를 취재하다 보면소름 끼치는 순간이 있다. 가령, 이런 적도 있었다. 해외 취재하러 공항에 도착해 리무진 버스를 타자마자 동시다발적으로 "경찰 누구, 민변 출신 유명인 누구에게 PD님 연락처를 받았다"며 본인들 명함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쏟아졌다. 문구는 정중했지만, 내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내게 영향력 끼칠 수 있는 인맥을 과시하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미행하거나 뒤에 숨어서 하는 공작은 많았어도 이런 대담한 접근은 처음이었다.

중앙일보

지난 7월 메이플이 JMS 교주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지목한 충남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 월명동 수련원을 다시 찾아갔다. 수해로 집이 무너져 있었다. [사진 조성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나는 신이다' 촬영 전후로 이런 각종 위협이 이어졌다. 일 마친 새벽 아무도 없는 컴컴한 지하 주차장에서 집에 들어갈 때가 제일 무서웠다. 몇 년 아무 일 없다 보니 이젠 그들이 섣불리 테러를 자행하진 않을 거라 생각해 무덤덤해졌지만, 모를 일이다. 최근 어떤 흥신소 사장이 "당신 뒷조사를 부탁받았는데, 난 안 하지만 누군가는 할 테니 조심하라"고 경고해 주기도 했다. 차 안엔 아직도 전기 충격기와 삼단봉이 있다.

처음엔 험한 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사명감으로 눌렀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 관계자들로부터 오는 직접적 위협에 더해 사법적 괴롭힘을 당하고 검·경으로부터 범죄자 취급을 받다 보니 이젠 직업적 회의감이 더 크다.

중앙일보

혹시 테러당할까 싶어 항상 차에 지니고 다니는 전기충격기와 삼단봉. [사진 조성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찰은 중국 도피(2001~2008) 중이던 JMS 교주 정명석에게 여성을 낙점하라고 보낸 일종의 샘플 동영상인 이른바 '보고자(정명석과 잠자리하는 여성) 동영상'을 내가 특정 신체 부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쓴 걸 문제 삼았다.

얼굴 가리고 목소리까지 변조하면서 모자이크는 안 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12년 모자이크 처리된 동일한 이 영상이 처음 인터넷에 공개됐을 때 JMS 측은 "(JMS를 고발한) 김도형 단국대 교수가 배우를 사서 찍은 조작 영상"이라고 주장했다. JMS가 촬영했다는 게 드러나자, 이번엔 모자이크 안에 나체 아닌 수영복이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한국에 송환되고, 10년 징역형을 마치고 2018년 출소한 이후에도 계속되는 JMS 교주의 그루밍 성범죄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선 이게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지난해 JMS 측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을 때 영상을 검토한 재판부 역시 일부 삭제나 수정 명령 없이 가처분을 기각했다.

검·경 조사 과정에서 '보고자 동영상' 관련 고발인 중 한 명을 특정할 수 있었다. 정명석 최측근 조직의 대표였다. 사이비 교주 범죄에 동조한 가해자의 사익이 정말 사이비 종교 해악을 고발하는 공익성보다 더 큰 걸까.



우리 사회의 부역자들



'나는 신이다' 제작 당시 JMS 정보력이 공포스러웠다. 너무 많은 정보가 실시간으로 새나가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넷플릭스에 신도가 있나 싶었지만, 방송 후 넷플릭스에 공유한 적 없는 파일 원본이 유출된 걸 보고 내부 관련자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촬영 동영상을 글로 옮기는 프리랜서 직종인 '프리뷰어' A가 스파이였다. 취재 내용을 가장 먼저 보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JMS 측 B에게 전달한 거였다.

중앙일보

JMS 내 경찰 조직인 '사사부'를 언급하는 정명석. [MBC 뉴스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00여명 있는 '프리뷰어 단톡방'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공개적으로 찾은 게 패착이었다. JMS 측은 "제작팀에 프리뷰어 5명을 투입했다"고 했는데, 실제로 나중에 몇몇을 더 찾아냈다. 가령 정명석 고소인 3인 중 하나인 호주 피해자 에이미가 변호사 만날 때 동석한 통역사는 우리 제작진이 영어 프리뷰어를 통해서 직접 섭외한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둘 다 JMS 신도였다. 이들은 "정명석 발음이 안 좋은데, 우린 오랫동안 계속 들어와서 잘 옮길 수 있었다"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쨌든 A를 특정한 덕분에 대외협력국 B로 연결됐다. 대외협력국은 A 같은 스파이를 JMS에 적대적인 조직에 침투시키고, 문제가 불거지면 누구를 통해 압력을 행사한다는 류의 시나리오를 짜서 실행하는 조직이다. 수장은 육사 출신으로, 현재 증거 인멸 혐의로 수감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A와 B는 '나는 신이다' 제작 당시 홍콩 피해자 메이플이 얼굴을 내놓고 정명석을 고발하는 동영상을 계속 접하면서 스스로 세뇌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B는 본인이 다룬 정보를 외장 하드에 담아 나와 사죄의 의미로 내게 전달했다.

바로 그 파일을 통해 사회 곳곳의 부역자 명단 일부와 사진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JMS 경찰 조직 '사사부'도 그중 하나다. 정명석은 한 강연에서 "사사부에 직접 가입한 경찰이 150명"이라고 했는데, 이 파일로 23명은 확인했다. 이중 주수호(정명석이 내린 가명)라는 서울 서초서 소속 강모 경감은 이미 지난해 12월 정명석 1심 판결문에 노출된 인물이다. 취재 중 JMS 관련 수사에 그가 개입한 녹취를 추가로 확보해 지난 4월 서울경찰청에 청문 감사를 요청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국가 공권력을 국민 아닌 정명석을 위해 쓰는 걸 용납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부패수사대는 6개월이 지난 최근에야 겨우 소환 조사 한 번 했다.

지난 2006년 JMS에 수사기밀을 유출한 현직 검사와 국정원 직원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는데 여전히 이렇다. 이러니 피해자들이 "대한민국 정부 못 믿겠다, 도와달라"고 나를 찾는 게 아닌가.



가족의 비밀



사이비 종교의 집요한 괴롭힘을 알면서도 스스로 고난의 길을 자처한 데는 가족의 비밀도 작용했다.

어릴 적부터 가족은 미스터리였다. 포로수용소에서 헌병과 간호사로 만났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고향은 전남 장성과 부산인데, 왜 경기도 부천에 자리 잡았을까. 친척 중 사기꾼은 왜 이리 많을까. 아버지는 대체 왜 몰래 아들 명의 신용카드를 만들고 억대 빚을 져, 아들이 암 투병 중인 아버지를 형사 고소할까 고민하게 했을까. 아버지 장례식 날 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를 위해 신도들이 "무슨 대학 졸업"이라며 약력을 읊었을 때 어머니는 왜 "마지막까지 거짓말"이라며 서럽게 우셨을까.

중앙일보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한 조성현 PD. 아버지가 사이비 종교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지난해 처음 알게 됐다. [사진 조성현]


온통 이상한 일투성이인데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사실 힌트는 있었다. 어릴 적 몇몇 집안 어른이 "할아버지 형제 중 하나가 한 사이비 종교 세운 신앙공동체 신자였다"며 "우린 제대로 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데 저들은 왜 저렇게 사느냐"고 말하곤 했다. 사실은, 할아버지 삼 형제와 그 자식들 전부 그 사이비 종교 공동체에서 착취당한 신도들이었다. 지난해에야 비로소 이런 사실을 확인하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부모 손에 이끌려 그곳에 간 아버지는 부모 강요로 국민학교 졸업 후 중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휴거가 곧 오니 더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을 거라 짐작한다. 탈출 후 학력을 위조해 대졸이 가는 곳에 취직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졸로 살았다. 아들을 낳은 직후 진실을 알았지만 평생 침묵했던 어머니와 달리, 난 끝까지 속았다. 그만큼 배신감이 컸다.

자라면서 부모의 사랑을 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 아이 낳을 생각을 안 했는데, 지금 두 아이 아빠가 됐다. 첫 아이(6)를 낳고 보니 자기 자식까지 죽일 수 있는 사이비 종교가 더 끔찍하게 다가왔다. 마침 친모 방치 속에 무차별 폭행으로 숨진 사이비 집단 '아가동산'의 최낙귀(당시 5세) 사건을 접하곤, 사건 자체의 잔혹함에 더해 교주의 무죄 선고에 분노해 다큐 제작에 들어갔다. 나를 똑 닮은 딸(3)을 낳은 후엔 사이비 교주의 성 착취를 끝까지 추적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결과가 성폭력특별법 피의자 신세다.

할아버지를 궁금해하는 아이에 이끌려 지난 2006년 장례식 이후 17년 만에 아버지 산소에 갔다. 아이는 제일 좋아하는 츄파춥스를 산소에 꽂으며 "아빠를 낳아줘서, 그래서 내가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했다. 그 장면 하나로 아버지와 화해했다.

사이비 종교 피해자였던 아버지를 용서하기도 이렇게 어려웠다. 하물며 현재진행형인 피해자들은 어떨까. 검·경은, 사법부는, 아니 우리 사회는 그런 고통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중앙일보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