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23 (수)

박대성 여고생 살인 현장 100m 옆…'치안 1위' 자축 현수막 걸렸다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지난달 30일 전남경찰청이 신상정보 공개를 결정한 순천 10대 여성 살해 피의자 박대성. 사진 전남경찰청,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이 전남 순천시 도심 한복판에서 일면식도 없던 10대 여성을 뒤쫓아가 살해한 박대성(30·구속)을 기소했다. 박대성과 범행 19분 전 직접 면담을 하고도 살인을 막지 못한 경찰은 ‘치안성과 1위’를 대대적으로 자축하고 나서 빈축을 사고 있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은 23일 귀가 중이던 A양(18)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로 박대성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박대성은 지난달 26일 오전 0시44분쯤 전남 순천시 조례동 자신의 찜닭가게에서 A양을 발견하고 뒤쫓아가 살해한 혐의다. 경찰은 A양 사망 나흘 뒤인 지난달 30일 박대성 신상을 공개했다.

검찰은 박대성이 A양 살해 후에도 흉기를 소지한 채 거리를 활보하며 추가 살해 대상을 물색한 사실을 확인하고, 살인예비 혐의를 추가로 적용해 기소했다.

중앙일보

살인 혐의를 받는 박대성이 지난 4일 오전 전남 순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경찰은 전남 순천시 조례동에서 길을 걷던 10대 여성 청소년을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 박 씨의 신상 정보를 국민의 알권리·수단의 잔인성 등을 고려해 지난달 30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검찰은 평소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던 박대성이 불법대출을 받는 등 경제적 궁핍과 가족과 불화 등을 이유로 A양을 분풀이 대상으로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일 송치된 박대성을 상대로 학교·군복무 기록,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묻지마 살인’ 등 범행 동기와 정신병력 유무 등을 조사해왔다.

경찰은 박대성 검거 당시 여러 허점을 노출하고도 치안성과를 자축하고 나섰다. 순천경찰서는 박대성 기소 이틀 전인 지난 21일 “2024년 경찰청 치안 성과 평가에서 전국 259개 경찰서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자료에서 경찰은 ‘수사역량 강화와 사회적약자 보호, 치안 고객만족도 등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고 했다. 순천경찰은 A양이 숨진 범행 현장에서 100m 떨어진 거리 등에 치안성과 1위를 축하하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이에 대해 시민들은 “A양이 숨진 게 엊그제 일인데 축하하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반응이다. 특히 시민들은 박대성이 범행 후 1시간20분간 거리를 배회했는데도 경찰이 직접 검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안감을 호소해왔다.

중앙일보

전남 순천시 한 도로에 순천경찰서 치안 1위 현수막이 걸려 있다. 이곳은 '묻지마 살인범' 박대성이 10대 여성을 피습한 현장에서 100m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시에 허가를 받지 않고 내건 불법 현수막이다. 사진 독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박대성 범행 직후 경찰은 순천경찰서와 지구대 등 경찰 57명을 투입하고도 검거에 실패했다. 박대성이 범행 당시 신고 있던 슬리퍼가 벗겨지자 자신의 가게로 돌아가 운동화를 신고 다시 거리로 나선 사실도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경찰은 범행 후 1.5㎞가량을 돌아다니던 박대성을 제압한 시민이 신고하자 현장에 출동해 체포했다. 박대성은 범행 후 술집과 노래방 등을 활보하는 과정에서 폐쇄회로(CC)TV에 웃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

경찰이 박대성 범행 직전 면담을 하고도 살인을 막지 못한 것을 놓고도 원성을 산다. 경찰은 A양 살해 19분 전인 오전 0시18분쯤 “동생의 극단적 선택이 의심된다”라는 박대성 친형의 신고를 받고 출동해 찜닭가게에서 면담 조사를 했다.

당시 경찰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괜찮다. 돌아가라”는 말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고 가게를 떠났다. 박대성은 경찰을 돌려보낸 지 8분도 지나지 않아 가게 앞을 지나가던 A양을 따라 나가 살해했다.

중앙일보

지난달 26일 전남 순천시에서 30대 남성이 10대 여고생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남성이 여고생 뒤를 쫓아가는 모습. 사진 JTBC 캡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경찰이 박대성 검거를 전후로 여러 허점을 노출했다”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경찰 프로파일러 1기 출신인 배상훈(55) 전 우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순천 조례동은 골목길이 굉장히 좁은 구도심인데 경찰 57명이 범죄 현장 1.5㎞ 안에 있던 박대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며 “시민이 (박대성의) 양손을 잡고 신고해서야 체포했다는 것도 역량 부재를 드러낸 부분”이라고 말했다.

배 전 교수는 “50명이 (현장에) 나갔다고 해도 2인1조씩 한 번에 25곳을 뒤질 수 있는데 (그 시간에) 문을 연 조례동 술집은 훨씬 적은 것으로 안다”며 “경찰이 이런 허점을 보이고도 범죄 현장 인근에 축하 현수막을 단다는 건 상식을 벗어난 행동”이라고 말했다.

순천=최경호·황희규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