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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3 (수)

그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뉴스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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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 참석한 한강 작가.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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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보미 | 뉴콘텐츠부장



지난 10일 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선 4년 전 읽었던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올랐습니다. 정확히는 그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작가의 말이었습니다.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팠기 때문이다. 키 크고 눈이 맑은 여학생 Y가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해주었다.” 그나마 손으로 글을 쓸 수 있을 때가 좋았다는 걸 곧 알게 됐다고 한강은 말했습니다. “백지 한장을 채우기 전에 손목이 아파 계속할 수 없게 되자,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2년에 가까운 자포자기의 시간을 보낸 끝에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해냈고, 그렇게 혼자 힘으로 ‘나무 불꽃’을 썼다고 했습니다.



한강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를 이루는 ‘고통 3부작’,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는 2002년 겨울이었습니다. 그의 나이 32살이었습니다. 손가락과 손목이 차례로 망가지자 볼펜 뚜껑으로 키보드를 눌러가며 소설을 완성한 30대 작가라니. 고통받았던 건 육식을 강요받다 나무가 되기를 바란 영혜만이 아니었겠구나 싶었습니다.



다행히 한강은 2007년부터는 “노트북 컴퓨터의 키보드를 열 손가락으로 두드려 쓰고 있다”고 했지만, 그 뒤 쓰인 작품을 읽을 때도 제 마음은 조마조마했습니다.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가 특히 그랬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 몸이 시시각각 만들어내는 고문의 순간들 속에 나는 갇힌다. 통증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부터, 아프지 않은 세계로부터 떨어져나온다”라는 경하의 생생한 고통의 증언이 작가의 고백인 것만 같았습니다.



경하처럼 한강도 10대 때부터 극심한 편두통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는 2017년 영국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편두통이 오면 일과 독서, 일상을 멈춰야 하기 때문에 항상 겸손해지고 제가 인간적이고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읽은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작가는 몇번이나 쓰다 멈추기를 반복했을까. 다른 곳은 괜찮을까 걱정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의 건강을 신경 써온 개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30대에 아팠다는 그의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 역시 30대였고, 아팠기 때문입니다. 노트북 작업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전신 관절에 통증이 생겨 일을 쉬어야 했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 게 많아서 더 아프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기력함과 불안으로 혼란스러운 저에게 그런 시절을 지나온 작가의 담담한 경험담은 위로가 됐습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1년의 시간을 건넜고, 다시 일할 수 있었습니다.



한강은 작품의 근원이 자신의 아픈 몸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제가 100% 건강하고 활력이 넘쳤다면 작가가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고까지 말했습니다. 연약한 몸이라서 연약한 존재들의 고통에 민감하고, 그 고통을 모른 체할 수 없다는 뜻일 거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취약한 이들에 대한 깊은 공감이 없었다면, 그가 거의 매일 울음이 터져 나오는 “압도적인 고통” 속에서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 그는 “그렇게(힘들게라도) 쓰지 않으면 더 힘들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쓴다. …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해주는 힘”(2017년 전남대 토크콘서트)이라며 외면보다 기록이 덜 고통스럽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을 글로 전하는 일이 덜 힘들다곤 하지만, 그 과정은 고행과도 같습니다. 2011년 41살의 한강은 집필 기간에는 “걷지도 먹지도 못하고 가장 수동적인 자세로”(산문 ‘기억의 바깥’) 글만 쓴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2년에는 “(소설을 쓸 때는) 스트레칭과 근력운동과 걷기를 하루에 두시간씩 한다”(산문 ‘출간 후에’)는 근황을 전했습니다. “다시 책상 앞에 오래 앉을 수 있게” 자신의 몸을 돌보고 있다는 반가운 얘기였습니다. 최근엔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고도 했습니다. 작가의 황금기라는 60살까지 책 세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는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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