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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목)

대다수 편의점에 없는 ‘장애인 편의시설’, 국가 책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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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23일 ‘장애인 접근권 국가배상소송’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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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까지 입구 경사로가 설치된 편의점은 100곳 중 2곳 정도였다. 편의점이 대다수가 관련 시행령에서 규정한 ‘편의시설 설치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장애인들이 해당 시행령을 방치한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측은 장애인 접근권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고 반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23일 김모씨 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차별구제 소송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건 공개변론이 열린 건 2021년 이후 3년 만이다. 지난해 조희대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1998년 장애인을 위해 경사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소매점의 범위를 규정한 ‘장애인 등 편의법 시행령’이 시행됐다. 이 시행령은 ‘바닥면적의 합계가 300㎡ 이상인 소매점’에 대해 편의시설 설치의무를 뒀다. 2019년 기준 전국 편의점 중 이 범위에 포함되는 곳은 1.8%에 불과했다. 원고들은 이 같은 시행령 규정으로 인해 접근권이 침해되는데도 20년 넘게 개정되지 않아 “장애인 보호의무를 진 국가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행위를 했다”며 국가배상을 청구했다.

시행령은 “장애인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위배돼 무효”라고 본 1심 판단에 따라 2022년 ‘바닥면적의 합계가 50㎡ 이상인 곳’으로 개정됐다. 그러나 1·2심 모두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는 상황이 지속됐어도 장애인의 생명·신체·재산 등에 대한 위험상태가 발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은 없다고 판단하면서 사건은 대법원까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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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를 비롯한 장애인 및 사회인권단체 회원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장애인 접근권에 대한 국가책임 배상에 대한 대법원 공개변론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준엄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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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변론에서 원고 측은 “국가가 위법한 시행령을 방치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률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는데, 국가가 이를 지키지 않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원고 측 대리인 이주언 변호사는 “관련 단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고, 시행령 제정 10년 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질 때에도 (시행령을) 개정할 수 있었지만 정부는 개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측은 그간 필요한 조치를 취해왔다고 반박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안성준 한국장애인개발원 환경정책기획팀장은 정부가 5년마다 장애인 편의시설 관련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편의시설 매뉴얼 등을 개발한 점 등을 들며 “누군가에게는 느리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부가 제도를 방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일한 변호사도 “정부는 장애인 등 편의법 하위법령을 최근까지 87회 개정하면서 장애인 접근권을 강화하기 노력했다”며 “섣불리 정부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측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은 것이 위법하더라도 원고들의 ‘정신적 손해’는 명확하지 않다며 배상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손해배상이 인정되지 않으면 국가의 위법행위와 원고들의 정신적 고통은 확인받지 못한다”며 “최소한의 금액으로라도 손해배상이 인정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 측이 장애인의 편의점 접근권에 대해 “대체수단이 많은 권리”라고 주장하면서 일부 대법관이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부 측은 “장애인이 편의시설이 구비된 대형마트에 가거나 온라인으로 주문해 편의점을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경미 대법관은 “놀랐다”며 “그때그때 필요한 편의점 등을 이용할 수 있는 일상생활을 전혀 구현하지 못하는 것인데, 활동지원인을 불러서 마트나 가라고 하는 것은 대체적인 권리로서 치환되는 이야기라고는 생각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의 원고인 김명학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은 변론 전 기자들과 만나 “60년 넘도록 휠체어를 이용하는 제게 1층은 그냥 1층이 아니었고 출입금지 구역이었다”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찾아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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